[박홍윤 교수의 창]과거에 사는 나라
[박홍윤 교수의 창]과거에 사는 나라
  • 충청매일
  • 승인 2019.03.2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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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충청매일] 서운한 일이 있거나 심사가 복잡하면 우리 집사람은 옛날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내가 그렇게 한 적이 있는지를 기억하지도 못한 일을 어제 일처럼 상세하게 이야기를 한다. 그럴 적마다 나는 혼난 강아지처럼 반성의 모습을 보이면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과거는 왜 잊히지 않고 현재 안에 들어오려고 하는가? 오웰은 “현재를 통제하는 자는 과거를 통제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과거 속에 살고 있다. 가까이는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전 법무차관 김학의 사건부터 권력이 개입되었다고 하는 장자연 사건과 사법 농단의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이 그러하다. 멀리는 일본 강점기 징용과 위안부 문제, 미국의 괴뢰로 표현되는 이승만 대통령 문제, 나경원 원내대표의 반민특위에 대한 논쟁에 이르기까지 과거가 국정을 통치하는 듯하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깨끗이 정리하여 결말을 짖겠다는 적폐청산이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없앨 수 없다. 그 역사는 항상 새롭게 해석되어 변화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청산되어서는 안 된다.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 삶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공자는 “맑은 거울은 얼굴을 보여주고 과거는 오늘을 알려준다”고 한다. 오늘을 보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보아야 한다.

우리가 과거라는 거울을 보는 목적은 과거의 잘잘못에 대하여 벌을 주고, 처벌하기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데 두어야 한다. 잘못된 관행, 부패, 비리를 청산하는 것을 소극적 목적인 징계와 처벌에 두고 그것을 정략적으로 활용한다면 우리는 적폐를 청산할 수 없다. 적폐청산을 부르짖는 현재에도 청산의 대상이 되는 관행, 부패, 비리가 지속하고 있다. 장관 인사청문회의 기준을 갖추지 못한 장관후보자, 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반복하였다는 의심을 사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블랙리스트처럼 우리는 가까운 과거의 교훈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올바른 삶의 모습과 통치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지 과거 속에 사는 것은 아니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적폐청산은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이다.

우리의 과거에는 아름다운 것도 있고, 빛바랜 사진첩처럼 즐거움을 주는 것도 있다. 보릿고개의 어렵던 시절의 과거는 추억이 되어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우리의 역사에는 친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을 위해 숭고한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투쟁도 있고, 가난과 근대화를 위해 머리털을 잘라 가발을 만든 우리의 어머니들이 있다. 과거가 있는 것은 사람의 잘못과 후회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즐거운 추억을 위해서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적폐청산만 할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과거를 끄집어내는 일도 함께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야지 과거 속에 살 수는 없다. 그러기에 오늘날의 미래는 너무도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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