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희 수필가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째려보는 듯이 날카로운 눈매. 부부싸움 하고 돌아누운 사람처럼 굳은 표정은 말할 것도 없어 이번 사진도 실패작이었다. 몇 년 전 찍은 사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인상이라니! 마치 탁본이라도 한 듯 비슷한 모습의 사진을 보니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실망스럽기는 딸애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사진을 받아든 딸애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낭패한 표정이었다.

운전면허증을 갱신하게 되어 딸애와 같이 사진을 찍으러 갔다. 증명사진을 찍고 나면 늘 마음에 들지 않아 속태우는 딸애가 지인을 통해 미리 사진관을 알아두었다. 이번에는 컴퓨터로 완벽하게 보완해주는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며칠째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아침부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포토 샵’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 앞에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학기 초라 그런지 학생들이 많고 드문드문 연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람이 많은 걸 보니 소문이 맞을 성싶었다.

사진관 내부 인테리어에서 흐르는 세련미와 우아함이 신도시의 포토샵에 걸맞았다. 따로 마련된 소품실에는 정장 옷과 화장품이 놓여있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감각이 돋보였다. 중학교 때 입던 하얀 카라가 달린 교복도 눈에 들어왔다. 아마, 연출 사진을 찍을 때 사용되는 소품이리라.

대기 번호표를 받아들고 벽에 걸린 사진 속 얼굴을 보니 모두 예쁘다. 개중에는 티브이에서 봄 직한 연예인을 닮은 얼굴도 있다. 서양 사람들이 보면 같은 동족인 양 얼싸안고 포옹할 만큼 굵게 쌍꺼풀진 눈과 오뚝 선 콧날이 서구적이다. 인조 인형같이 개성 없는 얼굴이 서로 자매인 양 비슷비슷하다.

사진을 보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성형수술을 받으러 온다는 말이 정말 실감 났다. 조각칼로 새긴 것처럼 윤곽이 뚜렷한 사진이 실재 인물이라면 이 세상에 못생긴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 같았다. 예쁜 전시 사진을 보면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신분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잠깐 설레였다.

드디어 성형이 시작됐다. 사진 기사가 시뮬레이션하듯 나를 조정했다. “눈을 크게 뜨고, 턱을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고 앞을 보세요.” 계속되는 사진기사의 요구대로 로봇처럼 근육을 움직였다.    

살다 보면 프로필이나 증명서에 붙일 사진을 찍어야 할 때가 있다. 하나, 이제껏 나를 대신하는 사진이 마음에 들어본 적이 없었지 싶다. 긴 시간 공들여 찍어도 사진이 나오면 늘 만족하지 못했다. 카메라 불빛 때문인지 짝눈이 될 때도 잦았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펼쳐놓고 보니 한결같이 낯빛이 어둡다. 마치 불편한 사람이라도 마주친 듯한 못마땅한 표정이 다소 심각해 보이기도 한다.

sns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사진은 다들 환하고 편안해 보이는데, 나는 뭐가 문제일까? 사진을 받아들고 불만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해야 해, 늘 힘없이 무표정이잖아?” 한다. 남편 말처럼 정말 웃음기 없는 차가운 표정이 문제일까?

사진 찍는 일도 예술 행위인데, 예술가가 찍는 사진이 왜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고객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지 못한다면 사진가로서 자격 미달이 아닌가? 사진을 받아 들면 꼭 사진사를 탓하며 착각에 빠진다.

예쁜 사진으로 운전면허증을 만들 거라고 자신하던 딸애가 말이 없다. 딸애도 내심 그림 같은 사진을 기대했나 보다. 실망스러워하는 딸애를 보며 사진을 찍는 일이나, 글 쓰는 일은 같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작가는 대상만 찍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표정까지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사람의 얼굴뿐만 아니라 수시로 변하는 심경도 담아내야 한다.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풍경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서 인식과 재인식까지 찾아내는 것이 글쟁이의 몫이다. 보이는 것이 다인 양 풍경만 설명한다면 독자들이 어떻게 감동할 수 있으랴.

수필은 다른 장르보다 사생활이 드러나는 편이다. 수필에는 글쓴이의 인생이 녹아있다. 그래서 수필집 한 권을 읽어보면 작가가 어떻게 사는지, 성향까지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살아온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그 젊은 사진사는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을까? 정말 순간의 표정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찍기는 한 것인지. 사진을 받아들고 속상해했던 내가 내 작품을 꺼내본다. 발표작이나 미발표 작품이나 내놓고 보면 늘 부족하고 부끄러워 숨고 싶다.

사진작가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흡족하게 찍은 사진은 작가의 프로필처럼 전시 사진으로 걸리지만, 어떤 사진은 휴지통에 넣고 싶을 때도 있으리라.

이미지 사진도 못 믿겠다고 속상해하는 딸을 보며, 나도 손으로 쓰는 글은 쓰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손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 잠자는 감각기관을 깨워 내면을 길어 올리는 따뜻한 글을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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