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며칠 전 모처럼 단비가 내렸다. 눈이 거의 오지 않았던 긴 겨울의 가뭄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지난  겨울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그리 춥지도, 눈이 많이 오지도 않았다. 아마 눈이 가장 적게 온 겨울 중 하나일 것 같다. 춥지도 않고 눈이 오지 않아 도시생활에는 편리했으나, 미세먼지라는 또 다른 복병을 불러왔다. 보통은 겨울철에 시베리아의 차가운 북풍이 중국과 서해안으로부터 유입되는 오염된 미세먼지와 황사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었는데, 겨울 기온이 올라가다 보니 미세먼지가 쉽게 내륙까지 파고들었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은 것은 미세먼지 뿐만 아니라 하천에도 영향을 준다.

흔히 겨울에 눈이 많이 오지 않으면 이듬해 흉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눈이 오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따뜻하면 농사에 해를 주는 해충이 겨우내 살아남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와 차가운 눈으로 해충을 조절해야 농사에 이롭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비 보다는 눈이 가뭄 해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빗물은 땅에 떨어진 후 빠르게 지표면을 흘러서 도랑과 하천을 지나 강과 바다로 빠져나간다. 일부 땅 속으로 스며들기는 하지만 그 양이 많지는 않고, 겨울철 딱딱하게 언 땅에는 더욱 그렇다. 반면 눈은 아주 서서히 녹으면서 땅 속 깊이 스며들고, 하천의 물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준다. 눈과 땅 속의 물은 봄철까지 서서히 흘러서 농사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한다.

기후변화로 더욱 따뜻해진 요즘 겨울은 눈 보다는 비가 많다. 계곡과 냇가에서 얼음과 쌓인 눈 아래로 졸졸 흐르던 냇물을 이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비가와도 잠시 뿐, 며칠 지나면 하천은 금새 마른다. 예전에 비해 숲은 울창한데 물을 오래 머금지 못한다. 오랜 시간동안 쌓인 낙엽이 토양에 영양분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비가 오면 우비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전엔 땔감과 퇴비로 낙엽을 거둬갔으나, 이제는 그대로 쌓여 있고, 겹겹이 쌓인 낙엽은 빗물과 눈이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방해한다. 더구나 지금은 산에 야생동물이 거의 없어 낙엽을 헤쳐 놓지도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해진 겨울, 눈 대신 내리는 비, 우비처럼 쌓인 낙엽, 야산에서 사라진 동물들이 농촌의 개울을 메마르게 하고 있다.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회색늑대를 복원한 이후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회색늑대가 어린 나무조차 가차없이 뜯어 먹던 사슴의 수를 적절하게 조절해 줌으로써 숲이 다시 무성해졌고, 이로 인해 생태계는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나타냈다고 한다. 인간의 짧은 생각과 능력으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사냥했던 회색늑대는, 오히려 생태계의 균형을 훌륭하게 조절하는 조율사였던 것이다.

최근의 강우량은 예전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도시는 물론 농촌의 하천은 거의 다 메마르다. 물이 없으니 생명도 없고, 하천답지도 않다. 하천에는 온통 잡초와 외래종 식물이 무성하다. 도시 하천의 물은 대부분 하수처리장이나 저수지에서 가두었던 물이고, 중간 중간 보에 가두어져 정체된 물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오늘은 세계 물의 날이다. 오늘 만이라도 우리 모두가 대지와 생태계의 생명수인 하천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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