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러게 말이유. 내 딴에는 생각해서 나눠준 것인데 외려 그것 때문에 다른 약초조차 싸잡아 찌질한 물건으로 소문이 나서 사러오는 사람이 줄었다니까유. 그래서 그때 알았지유. 남한테 물건을 주려면 내가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줘야겠다고, 안 그러면 주고도 욕 얻어먹는 게 남한테 뭐를 주는 것이라는 걸…….”

배창령이 자신이 겪었던 일을 임방주들에게 말했다.

“그걸 뭐 주고 뺨 맞는다고 하는 거여! 생기는 것도 왜 괜한 짓을 해서 왜 욕을 처먹냐?”

아직도 장순갑은 배창령이 한 짓이 못마땅해 볼멘소리를 했다.

“너는 안직도 말뜻을 모르고 남의 다리를 긁고 있냐? 대가리 속에 욕심만 그득하니 눈앞에 보이는 게 똥 밖에 더 보이겠냐?”

박한달이 답답하다는 듯 또 장순갑을 쪼아댔다.

“잘난 네 놈은 학현 임방주가 한 짓이 잘했다는 것이냐?”

“남한테 뭘 줄 때는 나한테 필요 없는 것 나쁜 것을 주지 말고, 쓸 만한 것, 내 가진 것 중 그중 좋은 걸 줘야 욕을 먹지 않는다는 얘기 아니냐?”

“장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는 물건은 제일 좋은 것으로 내놓아야 합니다. 남은 물건이 아깝다고 섞어서 팔면 좋은 물건조차 치시래기 취급을 받습니다. 파치 물건 아까워서 싸게 팔면 그 장삿집은 그런 싸구려 물건만 파는 집으로 압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물건을 취급해도 좋은 값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선 먹기는 곳감이 달다고 돈이 생기니 좋다고 하겠지만, 멀리 보면 그게 오히려 내게 독이 된는 것을 우리 임방주들께서는 깊이 새기기 바랍니다!”

최풍원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샛길로 빠지는 것을 막았다.

세상 이치가 모두 그럴 것이라고 최풍원은 생각했다. 장사라고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뭐든지 본심으로 대하면 늦더라도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최풍원은 확신했다. 최풍원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다 장사를 배우고 행상을 다니고 본방주가 되고 이제 여각으로 규모를 키우기까지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때로는 실낱만큼의 앞길도 보이지 않고 막막한 어둠이 닥쳤을 때도 고을민들에게 구휼미를 풀고 빚을 대신 청산해준 것도 모두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최풍원이 지금까지 장사를 해오며 사람을 중하게 여긴 근본은 거기에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이 사람이 있기에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사람이 없다면 일을 벌일 필요도 없었다. 사람을 위해 벌이는 일인데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면 그 일은 할 필요가 없었다.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장사꾼 수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잘 다뤄 단골을 늘려나가는 것입니다. 단골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나쁜 물건을 속여 팔면 되겠습니까. 그런 고마운 은인들에게 좋은 물건을 팔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최풍원이 왜 좋은 물건을 사람들에게 제공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말했다.

“맞소이다. 우리 장사꾼이 사람들한테 천대를 받는 것은 온갖 감언이설로 속이기 때문이오! 속이는 이유는 더 많은 이득을 남기기 위해서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동료들을 생각하지 않고 제 잇속만 생각하기 때문이오. 같이 장사하는 동료들은 욕을 얻어먹거나 말거나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그런 생각이 문제요. 개도 밥 주는 주인은 물지 않는 법이오. 그런데 자기를 먹게 해주는 사람들을 속이니 그걸 어떻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이까. 그러니까 장사치라고 뱃놈보다도 더 천대를 받는 거요. 남의 은공을 모르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오!”

김상만이 열변을 토했다.

“오죽하면 세간에서 장사치는 제 애비도 속인다고 합디까? 이런 취급을 받는 것도 모두 장사꾼들이 그렇게 행세하기 때문이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외다!”

“그런 장사꾼을 제재하는 규약도 넣읍시다!”

“규약만 만들면 뭐 합니까. 지키지 않으면 그뿐 아니겠습니까. 규약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어떻게 하겠다는 그런 벌칙도 만듭시다.”

“그런 장사꾼은 우리 본방에서 쫓아버립시다!”

“그것만으로는 너무 약합니다. 벌금도 물리고 곤장도 칩시다!”

각 마을의 임방주들이 흥분해서 중구난방 의견들을 내놓았다.

“임방주님들, 제재 같은 것은 차후에 논의하고 우선은 여각과 상전을 운영하기 위해 서로 지켜야 할 규약들이 있으면 그런 것들을 내놓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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