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내가 선친 일을 물려받아 이제껏 장사를 해오며 여럿 본 게 있다면 장꾼들을 속이거나 물건을 강매하면 안 되겠다는 거였소. 우선 당장 돈이 보이니까 첨에는 좋겠지만 종당에는 망하고 마는 게 그 길이었소!”

“맞소. 수완보다 중요한 게 신용이외다!”

박한달의 말끝에 김상만이 맞장구를 쳤다.

“장사를 오래오래 해먹으려면 장꾼들에게 믿음을 주는 게 제일이오!”

“내가 뗏일을 하다 장사를 시작했지만, 첨에는 내 물건만 팔려고 눈알이 시퍼렇게 나댔다오. 장사가 처음이니 물건 가리는 눈도 없고 아무 물건이나 마구 사서 그저 파는 일에만 급급했었다오. 물불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니 그런대로 돈은 벌렸지만 한두 번 낯익은 사람들이 그 다음에는 안 오는거유. 무슨 연유인가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라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오.”

“연유가 지 안에 있는 걸 모르고 남 탓만 했구먼!”

“그러게 말여. 좋은 물건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쁜 물건도 파는 데만 눈깔이 뒤집혀 강매하다시피 했지. 그러다보니 한두 번 나한테서 사간 장꾼들이 속았다고 소문을 내니까 점점 사람 발길이 끊어지는 거여.”

“장사꾼들은 장꾼들이 어리숙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장사꾼들 오산이지.”

“맞구먼. 한 번이야 속일 수 있겠지만, 두 번 속는 바보는 없지. 그리고 당장은 남 눈을 속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들통이 나지. 그것도 모르고 장사꾼들은 우선 당장 사람을 속여 이득을 봤다고 쾌재를 부르지. 내가 그랬지.”

김상만이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듯 자책을 했다.

“공짜로 주는 거라도 남 주는 물건은 내가 먹을 거보다 더 좋은 것을 줘야 욕을 안 먹어유!”

약초를 캐는 학현 배창령 임방주가 거들고 나섰다.

“학현 임방주는 무슨 일을 겪었기에 그런 얘기를 하시오?”

“산으로 다니며 약초를 캐다보면 좋은 놈도 있지만 흠집이 나 파치도 많이 나지유. 약 뿌리 팔아 먹고사는 놈이니 좋은 놈은 따로 골라 팔고, 남은 파치는 버리기 아까워 먹으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지유.”

“돈 주고 팔았어야 하는 건데, 공짜로 먹으니까 고마운 줄도 모르는 거여! 세상 인심이라는 게 다 그런 거여!”

한동안 잠자코 있던 장순갑이가 배창령의 말을 듣고는 참견을 했다. 장순갑은 약초를 그냥 나눠주었다는 배창령의 말을 듣고 그것이 아까워서였다. 좋게 말하면 장순갑은 알뜰한 사람이었지만, 참으로 남과 나눌 줄 모르는 야박한 사람이었다. 하기야 지난번 보릿고개 때 굶주리는 청풍 고을민들을 위해 본방에서 풀었던 구휼미조차 받아다 마을사람들에게 팔아먹은 사람이 장순갑이었다. 돈을 만드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벌일 수 있는 사람이 장순갑이었다.

“인간이 어찌 그 모양이냐? 눈깔이 두 쪽인 것은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라고 해서 뚫어놓은 것인데 너는 외눈박이도 아니면서 워째 한쪽으로만 보냐?”

박한달이가 장순갑을 쪼았다.

“내 얘기는 좋은 소리도 거시기 못 들으면서 팔아서 돈이나 만들지 뭣 때문에 거저 주고 욕까지 먹느냐는 얘기여! 국 쏟고 거시기 데는 꼴이지!”

“니 놈 눈깔에는 돈만 보이니 뭔 얘기를 해도 벽창우 한가지지!”

“그런 니 놈은 남의 얘기를 그렇게 잘 듣냐? 그래서 집안 살림은 내팽개치고 바깥으로만 도냐?”

“야, 이놈아! 남의 집안은 왜 들먹거리냐?”

“너만 모르지 남이 먼저 안다. 지 집 꼬라지는 엉망으로 해놓고 남의 집 살림 걱정이나 한다고 남들이 비웃는다 이놈아!”

“그래도 너처럼 욕은 안 먹는다 이놈아!”

박한달이와 장순갑이 눈알을 부라리며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을 할 것처럼 맞섰다.

“일을 도모해보자고 모인 자리에서 웬 싸움이오이까. 학현 임방주님 얘기나 마저 들어봅시다!”

최풍원이 두 사람을 말리고 나서 배창령에게 못다 한 말을 계속하라고 권했다.

“이웃들에게 준 파치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 거유.”

“무슨 소문이?”

“학현 임방 배창령이네 집에는 맨 찌질찌질한 물건만 판다고!”

“좋은 물건은 돈을 주고 샀으니 당연하다 해서 아무 말도 안했을 터고, 거저 얻은 거지만 물건이 좋지 않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이바구질을 했을 테니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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