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3월이면 너도나도 나무를 심는다. 부엌의 부지깽이를 거꾸로 꽂아도 뿌리가 내린다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심기는 열심히 심는데 제대로 가꾸지를 않아 마라죽는 나무가 많다. 오늘 아내와 나무를 심으러 고향 산으로 출발했다. 한 그루라도 더 심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준비하고 출발했다.

해가 들과 산을 모두 비출 무렵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신발을 갈아 신고 작업도구를 챙겨들고 출발하려다 보니 트렁크에 있어야 할 나무가 없다. 서둘러 출발하다보니 정작 오늘 심을 나무를 싣고 오지 않은 것이다.

다시 차를 타고 인근에 있는 묘목시장으로 갔다. 몇 주만 구입하고 돌아와 나무심기를 마칠 수 있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총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나 똑 같았다. 항상 천천히 준비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벌어진 사건이었다.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 에펠탑 주변에 있는 상인들이 한국 관광객들만 만나면 ‘빨리빨리’를 외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우리는 빨리빨리로 통한다. 그만큼 한국인은 성격이 급하고 서두른다고 붙여진 별칭인가 보다. 관광버스에 오르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빨리빨리를 외친다. 우린 이 말에 익숙하여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반면 너무 느려도 걱정이다. 돌 굴러가요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고로 이어진다. 옛날 우리네 양반들은 소나기가 쏟아져도 뛰지 않았다고 한다. 뛰어가면 앞에 내리는 비까지 맞는다고 절대 뛰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갔다고 전해온다.

‘비단을 얻기 위해 뽕나무를 심는다.’ 라는 말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지 말고 못자리 설치하고 쌀밥 찾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매사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시나브로 하라는 뜻이다. 손자를 위해 과일나무를 심는 마음이다.

‘국방부 시계는 멈춰있다.’ 그래도 제대일은 온다. 흐르지 않는 세월이지만 보이지 않게 세월은 흘러간다. 봄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면 어느새 낙엽 되어 쓸쓸이 뒹굴고 있다. 변함없는 산천도 보이지 않게 변하고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장모님이 지구 여행을 마감하고 우주로 떠나신 다음해의 일이다. 반복되어온 옥수수 농사를 우리가 이어서 짓게 되었다. 씨앗을 심고 가꾸기는 대충 아는 상식을 총동원하여 그럭저럭 가꾸었다. 이제 마지막 수확을 해야 하는데 어느 상태가 수확시기에 도달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에 옥수수수염이 마른 것들을 골라 자루에 따 담았다. 일단 미심쩍어 반만 수확하여 판매를 했다. 다음날 몇몇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설익은 옥수수를 따다 팔았다고 반품한다는 것이다. 황당했다. 이틀만 더 두었다 수확했으면 됐는데 서두른 결과다.

그 사건이 발생한 후 비단을 얻기 위해 뽕나무를 심는 자세로 농사일을 신중히 처리했다. 천천히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메모장에 심는 시기 수확시기 등 모두 기록하고 적절하게 처리해 나가고 있다. 나는 충청도의 슬로우 농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작은 빠르고 익는 시기도 늦지 않게 적기에 잘 맞추어 수확하고 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과제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적당한 수확의 시기를 찾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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