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옛날에 비하면 장사꾼들에 대한 사람들 생각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장사치라면 얕잡아보는 경우가 많았다. 얕잡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장사꾼들을 아직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았다. 조선의 신분제도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일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상인이라 부르는 장사꾼은 상민에 속했다. 전통적으로 장사꾼은 사·농·공·상이라 하여 장인보다도 못한 최하층으로 천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점차 사고 파는 물품 활동이 활발해지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식이 사회 전반에 퍼지며 상인들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장사꾼을 천시하는 풍토는 여전했다.

향교가 있는 마을인 교리 신덕기 임방주가 ‘장사꾼도 예를 차리자’며 내세운 규약의 속뜻에는 장사꾼들이 천시 받는 이유가 들어있었다. 장사꾼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나 물건을 만드는 장인보다도 천대를 받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조선의 기반은 농업이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농민들로 이들이 생산한 농산물이 조선 경제를 떠받히는 힘이었다. 양반이나 벼슬아치나 지주들 입장에서는 자기 고을의 농민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농산물을 많이 생산해야만 세금을 많이 거둘 수 있고 거두어들인 농산물을 무기로 고을민들을 자신들의 뜻대로 부림으로써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양반들의 입장에서 보면 장사꾼들은 일도 하지 않으면서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매매함으로써 높은 이득을 취하게 되면 자신들의 역할도 약화되고 농민들도 농사를 버리고 이탈할 염려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생산기반도 흔들리게 되고 자신들의 지배력도 약화될 것이 분명했다. 양반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인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고을 분위기만 해치는 무뢰배나 진배없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농민이나 기술자보다도 상인들을 천시했다.

상인들에 대한 그런 생각은 일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양반들과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거기에는 장사꾼들의 행태에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장사꾼은 속인다’라는 생각에서였다. 상인이 백성들에게 좋지 못한 취급을 받은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었다. 장사의 기본은 이득을 남기는 일이었다. 따라서 장사꾼은 남의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 그것이 백성들의 눈에는 자신들처럼 뼈 빠지게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입만 놀려 돈을 버는 사기꾼처럼 비춰졌을 것이다. 농사를 근본으로 하는 조선에서 장사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되어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다보니 원칙이 없고 물건 값이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어떤 장터에 엿장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엿장수는 장사를 이상하게 했다. 사람들이 ‘이봐! 엿 장수, 엿 팔게!’하면 한 푼에 한 가락을 주고, ‘이보시게! 엿장수 양반, 엿 파시게!’하면 한 푼에 두 가락을 주는 것이었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이 말을 찬찬히 뜯어보면 딱히 정해진 물건 값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저 엿장수 기분에 따라 더 줄 수도 적게 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장사꾼들은 친분관계나 이해관계에 따라 제각각 값이 차이가 나거나 물건의 양도 늘였다 줄였다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질 좋지 않은 물건을 좋은 물건이라 속여 팔기도 하고, 먹지도 쓰지도 못할 물건을 설레발을 풀어 팔아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장사꾼은 팔면 그만이었고, 나중에 들통이 나더라도 오리발을 내밀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 입장에서는 장사꾼을 속이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장사를 하며 대우를 받는다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스스로 행실을 바르게 하지 않아 남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이런 뜻에서 교리 임방주께서 말한 것도 규약에 넣읍시다.”

최풍원도 신덕기의 의견에 동조했다.

“나도 하나 제안을 하겠소이다.”

연론리 박한달 임방주도 여각 규약에 넣을 조목을 말하겠다며 나섰다.

“아부지는 남 규약 만들기 전에 집안 식구들 건사하는 법부터 배웠으면 좋겠네!”

박왕발이가 집안은 내팽개치고 바깥일에만 열심인 아버지가 못마땅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들인 왕발이의 속내는 알기나 하는지 아버지 박한달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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