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여기 이 자리에도 그런 임방주가 있슈! 지난 해 내가 살미장에 갔다 오다가 신당에서 무뢰배 두어 놈한테 붙잡히지 않았겠슈. 이놈들이 찍자를 붙으며 다짜고짜 지들 마을을 지나가려면 통행세를 내라는 거유. 빈 몸이었다면 냅다 줄행랑을 칠 수도 있었겠지만 등에 진 지게에는 살미장에서 본 물건이 잔뜩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손해 안 보고 놈들 손아귀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우.”

김길성이 장사를 다니다가 무뢰배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워째 요새는 일은 안 하고 남 등쳐먹고 살려는 놈들이 더 많어!”

“많기만 혀? 그런 도둑놈들이 뼛골 빠지게 일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잘 처먹고 더 잘 살어!”

“그 뿐이여? 도둑질 해쳐먹고 사는 놈들이 염치도 없이 목소리는 더 커!”

“세상이 지랄같이 변했구먼!”

예전이라고 동네마다 무뢰배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수 년 사이에 그런 무뢰배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게다가 포악해지기까지 했다. 예전만 해도 장사꾼들이 지니고 있는 물건의 약간만을 빼앗아서는 줄행랑을 치는 것이 대부분 무뢰배들의 수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아니었다. 장사꾼들이나 행인들의 물건을 몽땅 빼앗는 것은 기본이고 사람을 상하게 만들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는 경우도 종종 일어났다. 그러다보니 장을 옮겨 다니거나 으슥한 산길을 넘어가야할 때는 대여섯씩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요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혼자 몸으로 장사를 댕긴단 말이오. 그건 날 잡아잡슈 하고 건천에 내놓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유.”

“날이 아직은 대낮인데다 늘상 다니던 곳이니 설마 무슨 일 이야 있겠는가 싶었쥬. 더구나 거기는 사람들 왕래가 잦은 대로 아니유. 그런 한길에서 무뢰배를 만난다한들 사람이 많은데 뭘 워쩌겠슈. 그래서 그랬지유.”

“그나저나 광아리 임방주님, 여기에도 그런 임방주가 있다는 말이 뭐유?”

이야기가 자꾸 샛길로 빠지자 단리 복석근 임방주가 되돌려놓으며 물었다.

“내가 신당에서 무뢰배들에게 붙잡혀 곤경에 처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저 앞에 쯤에서 우리 본방 임방주가 오고 있는 게 아니유. 옳다구나, 이젠 살았구나 하고 내가 손을 흔들었지유. 그런데 분명 내가 손 흔드는 걸 보았을 텐데도 나를 보고는 방향을 돌려 샛길로 숨어버리는 거유. 그걸 같은 본방 임방주라 할 수 있소이까?”

“그게 누구유?”

“우리 동네 사람이 타동에서 그런 일을 당해도 구해줘야 할 판에 같은 임방주가 그러고 있는데 모르는 척 다른 길로 돌아간단 말이우. 그런 싹둥바리 없는 자가 누구란 말이오이까?”

“우리 본방에서 그런 얌체 없는 짓거리를 할 사람이 한 사람 밖에 더 있겠어유. 자기는 날 못 봤다고 빡빡 우기지만 그 사람은 분명 나를 본 게 틀림없슈! 같이 일한 세월이 얼만데 그럴 수가 있단 말이유. 물을 흐리는 그런 사람을 치도곤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여각 규약에 그걸 넣으시다!”

김길성이 누구라고 꼭 집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임방주들이 그 사람이 누구라는 것은 훤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것도 넣으면 어떻겠소이까? 장사도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일인데 도리가 있지 않겠소이까?”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아 말수가 없는 교리 신덕기 임방주가 말문을 열었다.

“장사에도 도리가 있겠지요. 그레 교리 임방주께서는 어떤 말씀을 해주시렵니까?”

최풍원이 모처럼 입을 연 신덕기를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사람 돼먹지 않은 작자가 장산들 제대로 하겠소이까. 장사도 사람 사는 일인데 사람도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본방 전체가 욕을 얻어먹는 일 아니겠소이까. 우리끼리도 아래 위를 따져 서로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장사를 하러 다른 마을에 갔을 때도 그 동네 어른을 보면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를 차리도록 이것도 규약에 넣읍시다.”

“신 임방주는 향교 마을 임방주라 그런지 장사를 해도 남과 다르시우!”

“그렇소이다. 인사하는데 빰 때리는 사람은 없을 거외다. 어디를 가더라도 어른 공경하고 인사를 잘 차리면 없는 떡도 생기는 법이오. 교리 임방주님 생각에 나도 찬동하오이다!”

장사를 하며 무슨 인사치레라며 한쪽에서는 비웃기도 했지만 대부분 임방주들은 신덕기 임방주의 이야기에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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