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불쌍한 인생 하나 잘 구해줬구먼!”

김길성이 김상만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김길성은 그 어린 녀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었지만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상관없었다. 이제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어린 것을 돌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방치했다면 십중팔구 녀석은 평생을 힘겹게 살아갈 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을 거둬 기술을 가르쳐 제 앞가림을 하게 만들어주었으니 아무리 남의 일이라 해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 뭘 하겠는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마음이나 쓰리지 않지, 괜히 오지랖 떨다 나만 등신되었지!”

“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슨 일이고 나발이고, 그 녀석이 일을 다 배워 도사공을 할 정도가 되자 변하기 시작한 거여. 그러더니 종당에는 내 일까지 가로채서 지가 단독으로 떼를 몰고 한양까지 오가는 거여. 젊은데다 떼 모는 공임까지 싹둑 잘라 헐하게 하니 목상들도 녀석만 찾고 나는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네.”

“그래, 그런 배은망덕한 놈을 그냥 두었는가? 혼구멍이라도 내주지!”

“왜 안 그랬겠는가. 혼구멍도 내보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사정도 봐가며 일을 해야지 내 혼자 살겠다고 마구잽이로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일러보기도 했지. 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네. 워낙에 어려서부터 사람들한테 치이고 고생을 해서 그런지 돈 생기는 일이라면 눈이 벌게져서 누구 말도 듣지 않았다네. 그러더니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돈을 꽤나 모은 녀석이 목상까지 손을 대더라구.”     

“뗏목장 목도꾼에서 목상까지 하다니 난 놈은 난 놈이구먼.”

“고양인 줄 알았더니 호랑이 새끼를 키운거지. 이 놈이 목상이 되어 돈을 벌더니 그때부터는 안하무인이 된 거여. 어릴 적 저를 거둬준 사람들까지 종 부리듯 하는 거여. 그러다 제 말을 듣지 않거나 거슬리면 뗏 일도 주지 않는 거여.”

“참으로 종자가 나쁜 놈이네! 그래 어떻게 되었는가?”

“나는 그때 마침 돌아가신 모친이 뗏목 타는 것을 하 반대해서 양평 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시작했지만 다른 뗏목꾼들은 어찌 하겠는가. 한 행보 다녀오면 목돈이 생기는데 드럽다고 쉽사리 그만 둘 수 있겠는가?”

“먹고 사는 게 참으로 곤욕이여.”

“안 그래도 사는 게 참으로 거시기한데, 그런 일을 당하고보니 사람한테 대한 정내미가 싹 떨어져버리는 거여. 다시는 어떤 놈한테도 뭐를 해주겠다는 생각이 사그리 가셔버리더라고.”

“왜 안 그러했겠는가?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하는 일이 젤루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 이지.”

“최 대주, 여각이 만들어지면 우리들끼리 지켜야 할 그런 약조도 꼭 넣는 게 좋을 듯 싶소! 우리끼리라도 서로 신의를 지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각각 제 이득만 쫓다보면 하루아침에 오합지졸이 되고 말지! 여러 임방주들 의향은 어떠시오?”

김상만이 여각의 규약에 서로 신의를 지켜야한다는 조목을 넣자고 의견을 내었다.

“양평 임방주님, 참으로 좋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다른 일도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리처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서로 믿지 못하고 반목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를 지키겠다는 조목도 만들어야겠지만 신의를 저버리고 여각과 동료들에게 해를 끼쳤을 때 어떻게 하겠다는 벌칙도 만듭시다.”

“양평 임방주도 최 대주도 정말 중한 얘기를 하셨소이다. 아무리 좋은 규약을 만들어도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고, 위방을 했는데도 그냥 둔다면 규약이 무슨 소용이오. 그에 대한 엄한 벌칙을 만들어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징치를 하겠다는 그런 약조문도 만듭시다. 그리고 우리 동료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열 일을 제쳐두고 반드시 도와야 한다는 규약도 만듭시다!”

박한달이 신의에 관한 규약에 찬동하며 또 새로운 규약 조목을 제의했다.

“그것도 참으로 필요한 조목이라고 생각하오이다. 장사를 다니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해 곤경에 빠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였소이다. 특히나 객지 장터에서 흥정하다 싸움이 일어났을 때 그놈들은 떼를 모아 덤벼드는데 나는 혼자일 때도 그렇고, 무뢰배들에게 억울하게 당할 때도 그렇고, 특히나 이 장 저 장으로 밤길을 걷다 도둑을 만나면 더욱 막막하고 위험하고, 객지 주막을 전전하다 아플 때는 누구 하나 머리맡에 물 한 그릇 떠다주는 사람 없을 때는 참으로 서로웠소이다!”

복석근이 자신이 장사길을 다니다 겪었던 일들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박한달이 내놓은 조목도 여각 규약에 넣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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