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제6부 도거리로 북진본방 상권을 넓히다(523)
[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제6부 도거리로 북진본방 상권을 넓히다(523)
  • 충청매일
  • 승인 2019.03.1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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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그 말 그대로지, 살을 붙이고 말고 할 게 뭐 있소. 내가 이제껏 물이나 뭍에서 살아오며 한 가지 터득한 게 있다면 믿음이 없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말자는 것이오! 그런 사람은 제 이득이 생길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하다가 잇속 볼 게 사라지면 뒤통수를 치고 등을 돌리더이다. 내가 한창 때 강을 오르내리며 떼를 탈 때요.”

김상만이 임방을 하기 전 남한강 상류에 있는 벌목장에서 한양까지 뗏목을 타고 다닐 때 이야기를 꺼냈다.

“뗏목 몰아다 한양 목상에게 넘겨주면 끝나는 일인데 거기도 그런 여우같은 놈이 있단 말인가. 그래 어떤 놈인가 얘기나 들어보세!”

“장사도 배워야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맘만 있다고 무작정 시작할 수 있겠는가. 뭍에 오르기 전에는 사잣밥을 등에 지고 사는 게 떼꾼 팔자인데, 그 위험한 일을 하려면 배울 게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하기야 단단한 땅바닥에서 사는 것도 하루하루가 간당간당한데, 미친년 널뛰듯 출렁거리는 시퍼런 강물 위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 일이니 왜 안 그렇겠는가? 나도 강아리 강가에서 밭일하며 강 따라 내려가는 떼를 숩시 봤지만 금방이라도 떼 위에 사람이 물살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만 같아 보기만 해도 오금이 스멀스멀 저리더구먼.”  

광아리 임방주 김길성이가 떠올리기만 해도 무섭다는 듯 사지 떠는 시늉을 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장마철 벌건 황톳물도 타는데 시퍼런 물이야 논바닥처럼 평평한 데 그깟 물길은 눈 감고도 내려가지. 여하튼 그런 물도 쪼금도 겁나지 않았던 한참 때였어. 영춘 뗏목장에서 그 놈을 만났지. 안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놈이 그런 거친 일을 하는 것이 안쓰러워 주막으로 델고 가 요기도 시켜주곤 했다. 그게 고마웠든지 그 어린놈도 날 곧잘 따라다녔지.”

“장정도 뼛골에 골병이 든다는 힘든 목도 일을 어쩌다 그런 어린 것이 뗏목장까지 왔디야?”

김길성은 김상만의 이야기만 듣고도 어린 것이 안쓰러웠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조실부모하고 작은 애비 집에서 살았는가본데 작은에미 구박이 너무 심해 견디다 못해 뭘 훔쳐 뛰쳐나왔다고 하더구먼. 듣고 보니 어린 놈 처지가 너무 측은해 뗏목 일을 배워보지 않겠느냐 했지.”

김상만이 알지도 못하는 어린 것한테 뗏목 일을 가르쳐주겠다고 한 것은 큰 보시였다. 뗏목일이 위험하기는 했지만 큰 벌이였다. 상뗏꾼인 김상만이 한창 날릴 때는 영춘서 한양 광나루까지 한 행보만 해도 쌀이 일고여덟 섬이었다. 머슴 중에서 가장 일을 잘한다는 상머슴이 한 해 농사를 짓고 받는 세경이 석 섬인 것을 생각하면 한 행보에 한 달이 채 걸리지 않는 시간에 그리 받는 것은 길을 걷다 돈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벌이가 좋다보니 떼 모는 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뗏목일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벌이도 벌이였지만 뗏목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었다. 뗏목을 모는 일은 도사공과 조사공이 함께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목숨 줄이 서로에게 걸려있는 일이었다. 김길성 임방주의 말처럼 구경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위험한 일이 떼를 모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만 위험한 물 위에서 무사히 떼를 몰 수 있었다. 서로 조금이라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금방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그래서 떼를 모는 두 사람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사람이어야만 한 떼를 타고 자기 목숨을 마음 놓고 상대에게 맡길 수 있었다.

그런데도 김상만이 어린 것을 자신의 조사공으로 만들겠다고 한 것은 녀석의 인생이 너무 측은해서였다. 어린 녀석은 그 힘든 목도를 하면서도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입이나 벌어먹으면 다행일 것이었다. 어지간히 힘쓰는 일에 이골이 났다하는 장정들도 목도 일을 하고나면 저녁에는 굴신도 못하고 죽은 것처럼 방바닥에 쓰러지는 것이 그 일이었다. 하물며 아직 뼈가 여물지도 않은 어린 것이 목도일부터 시작하면 장정이 되어 품삯을 받기 전에 뼈가 먼저 녹아 삭어 버릴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평생 돈벌이도 못하고 골골대다 인생 종칠 것이란 예감을 김상만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어린 것이 일은 잘 하던가?”

“그럼, 얼마나 싹싹하던지 입에 혀처럼 굴었지. 입에서 말이 나오기도 전에 알아서 척척 일을 해내니 모르는 것도 배워 와서 해주고 싶었지. 물길이라는 게 하도 종잡을 수 없어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바람난 계집 마음도 물길처럼 변덕이 심하지는 않을 거여. 나도 십 수 년을 걸러 무진 고초를 겪은 후에 겨우 익은 온갖 기술들을 녀석에게 모두 알려줬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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