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임방주들끼리 분란이 일어나려하자 최풍원이 양쪽을 다독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망치가 약하면 못이 튀는 법이었다. 집안에 대주가 없으면 집안 꼬라지가 개판이 되는 것은 하루아침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인 회합에서 주장이 약하면 제각각 흩어져 오합지졸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임방주님들, 지금의 본방을 여각으로 바꾸고 여각에 맞는 규약을 만들어야 하겠소이다!”

“대주, 본방을 여각으로 늘리자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갔으나, 규약은 또 뭐요?”

박한달이 물었다.

“사방팔방 끼어들며 모르는 것이 없는 놈이 워째 그건 모른다냐?”

장순갑이 좀 전 자신을 몰아세웠던 박한달에게 보복이라도 하듯 비아냥거렸다.

“여각으로 확장하게 되면 규모도 커지고, 그만큼 여각에 속하는 임방주나 객주들도 많이 늘어날 텐데 지금처럼 잣가지 놓고 셈하듯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할 수는 없을 게 아닙니까? 그래서 서로 지켜야 할 도리를 만들자는 것이요!”

“지 장사 지가 하면 되지, 서로 지킬 게 뭐 있단 말이냐?”

최풍원의 말을 장순갑이 어그깠다. 그것은 의도적이었다. 이제껏 장순갑은 북진본방에서 임방주들과 함께 하는 일을 단 한 번도 동참한 적이 없었다. 자기 장사에 티끌만큼이라도 축나는 일이면 슬그머니 종적을 감췄다.

“니 놈이야 남 생각 않고 니 욕심만 챙기는 놈이니까 당연 지킬 게 없겠지!”

서로에게 꼬라지가 난 박한달과 장순갑은 상대방이 무슨 말만 하면 눈을 부라리며 물어뜯는 소리를 해댔다.

“지금까지야 본방을 중심으로 청풍 인근의 동향 분들과 일을 해왔으니 정분으로 넘어가는 일도 많았습니다. 겉으로는 말을 못해도 그것 때문에 서운한 임방주님들도 계셨을 겁니다. 우리 임방에서 한 일이 더 많은 대도 그렇지 않은 임방과 똑같이 분배를 하고 고을민들을 돕는다며 임방주들과 깊은 논의도 없이 갹출하고, 돌아보니 참으로 두서없이 장사를 해왔던 것 같소이다. 그래도 이만큼 우리가 자리를 잡은 것은 한 고을 사람이고 임방주님들께서 저를 믿고 묵묵히 따라준 덕분입니다.”

최풍원이 둘러앉은 임방주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최 대주, 우리가 본방만 위해 일했는가? 우리도 크게 도움을 받았지. 솔직한 얘기로 나만 해도 최 대주 아니었으면 광아리에서 남의 소작을 부치며 땅 밖에 더 팠겠는가. 그래도 덕분에 농사도 지으며 장사도 하니 때 걱정은 하지 않고 살지 않은가?”

김길성이 되려 최풍원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올시다. 나도 최 대주가 아니었으면 향교 뒷심부름이나 하며 지금도 그냥저냥 연명만 겨우 하고 있었을 것이오. 아직도 우리 교리 선비님들 중에는 나보고 글줄이나 읽은 자가 천박하게 장사를 한다고 외면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소이다. 그러나 이젠 세상도 엄청 바뀌지 않았소이까. 선비들 중에는 나를 만나면 은근하게 어떻게 하면 장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소이다. 참으로 천지개벽을 하는 시대가 되었소이다. 가솔들은 몇날 며칠을 굶는지도 모르고 들어앉아 수염이나 쓸며 글이나 읽는다면 그게 뭔 소용이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일 아니겠소이까. 서책보다 가솔들 배 불려주는 일이 더 중하지 않겠소이까. 이게 다 최 대주를 만난 덕이오!”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신덕기 임방주가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본방 아니면 지금도 금수산이나 빠대고 다니며 풀뿌리나 캐는 약초쟁이로 살았을 것이유. 그런 산골에서 본 것도 들은 것도 없는 내가 뭘 할 일이 있었겠어유. 선조 때부터 배운 것이 그것뿐이니 그것밖에 할 일이 뭐가 있었겠슈. 그래도 임방을 차리면서부터 많은 것을 배웠어유. 그전까지만 해도 캐온 약초를 다듬어 장에 내가 사람들이 주는 대로 팔아 그냥저냥 입이나 지우 그슬렀지유. 그런데 임방을 차려놓고 나니 사방에서 약초꾼들이 온갖 약초를 들고 찾아오니, 이젠 약상들이 우리 임방으로 찾아들고 있어유.”

배창령 임방주는 지금의 자신의 입장에 매우 만족하는 눈치였다.

“학현 임방주는 이젠 직접 약을 캐러 산에 갈 필요도 없겠소이다.”

“산이 다 뭐유. 찾아오는 약초 받아 갈무리하기도 손이 모자랄 판인대유! 이게 다 본방과 대주 은공이유!”

“학현 임방주만 노 났네!”

배창령이 최풍원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에는 아랑곳없이 장순갑은 배창령이 앉은장사만 해도 바쁘다는 말에 더 관심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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