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지금까지 ‘시인의 책꽂이’라는 꼭지로 저의 기억에 특별히 남은 책을 100권 조금 넘게 소개했습니다. 그 동안 주제넘게 책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했고, 아는 체를 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 바다처럼 넓은데 좁쌀만한 지식으로 읽은 세상의 한 귀퉁이를 소개하다 보니 때로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아쉽지만 이제 이 잘난 체의 행렬을 마무리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책을 읽게 된 것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고, 호기심은 그것을 채워주진 못한 앞사람들 때문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문에는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책을 통해서 만난 세상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쳤습니다. 그리고 그 치우침은 학교 교육 과정에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예컨대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음악시간에 국악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1970년대 교과서에는 국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를 오래 생각해보았습니다. 2가지 정도로 짐작됩니다. 첫째, 그 당시에 음악이란 서양음악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들판에서 모심으로 노래하는 농사꾼들의 소리는 음악선생님이나 음악가들에게 음악이 아니었던 거죠. 둘째는 이런 현상을 굳이 좋게 해석하자면 국악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서양음악만을 가르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대학의 운동권 학생들이 늙은이들을 찾아가서 풍물을 배웠고, 그 뒤로 국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국악은 음악교과서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과연 음악만이 그러할까요? 조금만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지는 불과 100년 정도입니다. 서양의 모든 문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우리나라에 나름대로 모든 사람 살리고 사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전통 풍습이나 습속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예컨대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치료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민간요법이라는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서 배 아픈 아가의 배를 할머니가 쓰다듬으면 ‘미신’이라는 핀잔을 줍니다. 심지어 입춘방 써 붙이는 일까지도 미신 아니냐고 하는 것을 제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제가 둔재임에도 글을 쓰게 된 까닭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학문으로 왕따(돌림) 당한 전통을 처음으로 만난 분야가 활쏘기였습니다. 활쏘기는 조선시대의 국방의 중추 노릇을 했는데도 갑오개혁(1894) 때 무기로부터 제외되면서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환경에서 동호인 1만명 내외의 인구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입니다. 국내에만 있는 경기여서 언론으로부터 조명을 받을 일이 없고, 돈이 안 되니 학자들이 달려들어서 연구할 리도 없습니다. 우리 5천년의 역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내팽개쳐진 상황을, 활터에 처음 올라간 1994년에 생생하게 맞닥뜨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소개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손댄 것이 “우리 활 이야기”(학민사, 1996)였고, “한국의 활쏘기”는 우리 활의 종합 안내서를 구상하고 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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