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풍원이 이제부터는 임방주들이 산지사방을 다니며 물건을 구해야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최풍원이 한양에서 돌아본 시전 상인들의 장사 방법과는 반대 방법이었다. 한양 시전 상인들은 상전에 앉아 찾아오는 사람들을 받기에도 벅찰 정도로 붐볐다. 그러나 그것은 한양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한양은 조선의 도읍이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렇게 많은, 온갖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쓰던 부지깽이도 장에 내놓으면 팔리는 것이 여사였다. 뭐니뭐니해도 장사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성황을 이루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러나 청풍은 달랐다. 북진은 더더욱 달랐다. 청풍에는 도호부사가 관장하는 관아가 있고, 닷 세마다 향시가 열리고, 읍성 안에는 수백 명의 고을민들이 항시 거주하고, 고을 앞으로는 한양으로 직통하는 남한강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내륙 깊숙이 자리한 청풍은 궁벽한 산골에 불과했다. 그래도 북진에 비하면 청풍은 대처였다. 북진은 더 궁벽했다. 똑같은 남한강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었지만 북진의 남한강은 청풍에 비하면 썰렁하고 후미지기 이를 데 없었다. 최풍언이 북진본방을 이곳에 차리며 예전보다는 그래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기는 했지만 관아를 끼고 수백 년 동안 터전을 다져온 청풍에 비하면 부잣집 헛간만도 못했다. 어쨌거나 청풍이나 북진이나 한양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최풍원이 한양 시전을 둘러보고 배운 것은 북진을 물류 집산지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한양의 장사가 활황을 이루는 근저에는 도성 인근에 여러 나루터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루터에는 경상이라고 불리는 경강상인들이 있었다. 이번에 최풍원이 둘러본 삼개나루에도 팔도의 각 지역 물산을 한양으로 옮기는 경상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한양의 시전도 팔도의 여러 고을에서 물건을 실어오는 경강상인들이 없으면 구실을 할 수 없었다. 삼개나루를 중심으로 팔도를 다니며 그곳의 물산들을 사서 실어 나르는 마덕필 선주같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삼개에 여각이나 도가를 차려놓고 직접 물산들을 거래하기도 하고 다른 경상들이 가지고 온 물건들을 흥정해서 도거리하기도 하였다. 삼개나루에는 그런 여각과 도가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여각과 도가마다 팔도에서 모여드는 상인들이 북적였고 물산들로 넘쳐났다.

최풍원도 북진을 한양의 삼개나루처럼 만들고 싶었다. 청풍 인근의 모든 물산들이 북진나루로 몰려들도록 하고 싶었다. 청풍 인근의 물산은 물론 강원도와 경상도 물산도 북진나루로 몰려들게 만들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북진을 지나쳐 청풍 읍나루에만 정박하는 한양의 경강선과 경상들까지 북진에 닻을 내리고 진귀한 물산을 풀어놓는 명실상부한 청풍의 중심으로 북진나루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지금의 북진본방 조직을 완전히 바꿔 탈바꿈시켜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흩어져있는 임방을 북진으로 한데 모아 본방의 규모를 키우고 두서도 없이 무작정 닥치는 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 임방주들의 소임 도 물목별로 분담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전문화되려면 청풍 인근에서 생산되는 물산만으로는 수급이 불가능했다. 모자라는 양만큼 다른 지역까지 진출하여 물산을 조달해야만 했다. 최풍원이 임방주들에게 물건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은 그 말이었다.

“대주, 나는 일 년 중 태반이 넘게 농사를 짓는데, 전적으로 장사에만 매달리라고 하면 살림은 어떻게 꾸려나가란 말이오?”

반농반상을 하는 광의리 김길성 임방주가 난감해했다.

“나도 한 겨울만 빼놓고는 산속에서 살다시피 하는데 어떻게 북진에 와 전만 지키고 있으란 건지 참으로 막막하다오.”

금수산 골골을 안마당처럼 헤집고 다니며 약초를 캐는 학현리 배창령 임방주도 답답한 표정이 역력했다.

“난, 우리 마을에서도 아직 자리도 못 잡고 있는데 남의 마을에 와서 무슨 장사를 하겠소이까? 더구나 이제부터는 장사에만 매진하라니 오금부터 저리오. 이제까지처럼 제 마을에서 나오는 물건이 있으면 모아서 본방으로 가져오고 물건이 없을 때는 각기 제 집에서 제 일을 하면 안 되겠소?”

교리 신덕기 임방주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잔뜩 묻어났다. 북진본방이 만들어지며 처음 장사를 시작한 신덕기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신덕기 입장에서는 최풍원의 말은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뛰라는 말과 한가지였다.

“단리 임방주는 어찌 생각하시오?”

최풍원이 복석근 임방주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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