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충청매일 충청매일] 우리는 3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지만, 중국은 9월에 시작돼 이듬해 6월에 종료된다. 그리고 겨울방학은 따로 없고, 구정을 기해서 한 달간 학기말 방학이 있다. 음력으로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곧바로 개학을 한다. 그래서 지난 2월 20일에 이미 2학기가 개학되었다.

옛말에 “한 해의 수확은 곡식을 심는 것이 최고요, 10년의 수확은 나무를 심는 것이 최고요, 100년의 수확을 교육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교육국가백년대계’라고 하였다. 전 세계는 지금 교육에 국가의 운명을 걸고 있다. 한강의 기적도 원동력이 교육에 있다. 중국의 교육열도 한국에 못지않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현실을 보면 심히 우려스럽다. 며칠 전 친구들과 어울려 해장국을 먹다가 한 친구로부터 뼈아픈 말을 들었다. 그 친구는 “허, 기가 막혀!”를 연발하며 한숨을 쉬는 것이다. 사연인즉, 며느리가 초등학교 교사인데 5학년 담임이라고 한다. 지난 해 11월 교실복도에서 남학생 둘이 엉겨 붙어 주먹질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싸움을 말리느라고 한 학생의 팔을 붙들었더니, 돌아서서 말리는 담임선생에게 달려들어 폭행을 가해 부상당해 출근도 못한다고 한다. 그 남학생은 힘이 어찌나 센지 웬만한 어른도 당하지 못할 지경이란다. 그런데 그 학생의 아버지가 “선생이 뭔가 잘 못했으니까 때리지 않았겠어요?”라고 말하더란다.

중국의 학교가 부러운 것이 학교폭력이 없다. 신문이나 방송에 어디에서도 학생들이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교사에게 주먹질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면 중국에는 왜 학생폭력이 없을까?

첫째, 철저한 준법정신 교육이다. ‘공정, 법치’는 중국사회주의의 핵심가치이다. 법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다. 그러나 법에 어긋나면 가차 없이 법대로 집행한다. 학교에서도 준법교육은 그만큼 철저하다.

둘째, ‘학생회’를 통한 자율적 단체생활이다. 중국학교의 교사조직은 교무처(敎務處)와 정교처(政敎處)로 돼 있다. ‘정교처’에서 학생회 간부들이 학생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감독한다. 학생회 간부들은 모법적인 학생들로 구성돼 있어서, 교사에 버금가는 명령의 권위가 있다. 이들이 학생들의 생활을 관리 감독하므로 폭력이 있을 수가 없다. 학생회간부들 중에 우수생들은 ‘공청단(중국공산주의청년단)’으로 진출할 수가 있어서 이들의 활동은 아주 의욕적이다.

셋째, 중국의 언론은 국가의 철저한 통제 하에 운영되고 있다. 언론을 통해 국민을 계도(啓導)함으로써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선행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방영하고 있다. 중국에는 학교폭력이 왜 없는가?

교육은 선생님과 제자간의 만남이다. ‘학생은 선생님만큼 성장하고, 학교는 교장만큼 성장한다.’고 한다. 새 학년에 기해!  선생님과 제자가 좋은 만남을 통해,  행복하고 즐거운 ‘기쁜 만남!’, 영혼과 영혼이 교감하는 ‘깊은 만남!’, 인류사회발전에 이바지 하는 ‘창조적인 만남!’이 돼서, 부디 학교에서만은 폭력이 없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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