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주성 변호사

[충청매일 충청매일]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형사절차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무기대등의 원칙’입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한 사람의 죄를 묻는 검찰과 죄가 없음을 주장하는 변호인은 동등한 존재이고 그에 따르자면 똑같은 지위인바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법원은 검찰과 변호인이 동등하다는 전제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무죄추정의 원칙’ 즉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반드시 피고인은 무죄라는 전제하에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은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방어권 보호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무상 형사변론을 담당하는 변호인들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원칙이 엄격히 준수되는 것인지 의문이 많습니다. 무기대등의 원칙보다는 검찰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 아닌가라는 느낌과, 오히려 농담삼아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닌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법부에 대한 적폐수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다수의 판사들이 직접 검찰의 조사를 받아보니 설마 이럴 줄은 몰랐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어보니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해당 기사의 요지는, 당신도 죄인이 될 수 있다는 미묘한 언급을 통한 은근한 심리적 자백의 유도, 진술조서에 있어서 본인의 진술 중 유리한 부분만 기술하거나 언급한 의미와 다른 뉘앙스의 진술기재 등을 언급하며 설마 이럴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또한 직접 경험해 보니 그간 변호인들이 지적한 진술조서의 문제점을 오히려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술조서의 문제점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과거부터 수차례 지적되었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우리말의 특성은 진술조서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또한 입으로 한 말과 글로 쓴 말의 의미가 상당히 다르고, 받아 적는 입장이 검찰이다 보니 작성자의 의도에 따라서 쉽게 왜곡됩니다. 많은 의뢰인들이 본인의 진술임에도 자신의 의도는 이런 내용이 아니었다거나 강압에 가까운 추궁에 어쩔 수 없이 진술했다는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가 경험한 대부분의 재판에서는 설마 검찰이 그렇게 했겠느냐는 전제에서, 진술조서의 번복이 인정되지 아니하고 대부분 최초의 진술조서의 내용대로 인정이 됩니다. 그간 많은 변호사들이 그러한 문제점을 누차 지적했음에도, 법원은 그러한 주장을 수용하지 않다가 직접 검찰 수사를 경험해보고서야 그러한 시각을 바꾸겠다고 하니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를 보면서 그래도 혹시나 그간의 그러한 태도가 조금이나마 바뀌고 피고인을 위한 적절한 변론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생기기도 합니다.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많은 변호사들과 어쩌면 법원이 스스로 수사대상자가 된 경험을 통해서, 법 원칙에 충실한 재판을 진행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형사법정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아이러니 하게도 이 또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유산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이러한 제도의 피해자는 정말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조사단계에서부터 변호사를 선임하여 조사를 받고 꼼꼼히 조서를 체크하며 방어권을 행사합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곧 돈을 의미하는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무방비로 노출이 되는 것이지요. 이 법적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서 다시 한 번 무기대등의 원칙이 준수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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