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충청매일] 기원전 200년 전국시대, 범수(范睡)는 위(魏)나라 사람이다. 언변이 좋고 학식이 뛰어났으나 젊은 시절에는 벼슬 운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대부 수가를 모시고 제(齊)나라에 가게 되었다. 제나라 왕이 수가 일행을 맞이하는 중에 범수의 재능이 특별난 것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한밤중에 신하를 보내 몰래 뇌물을 주어 회유하려 하였다. 하지만 범수는 그건 도리가 아니라며 거절하였다. 그런데 수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범수가 제나라와 내통했다고 의심하였다. 귀국하자마자 재상 위제에게 이를 보고했다. 위제가 격분하여 범수를 잡아 초주검이 되도록 매질하도록 했다. 매를 맞다가 범수가 의식을 잃자 위제가 거적에 말아 변소에 내버리라 하였다. 변소에서 간신히 깨어난 범수는 관원의 도움으로 빠져나와 친구 정안평의 집으로 피했다. 거기서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바꾸고 복수를 다짐했다.

어느 날 강대국 진(秦)나라의 사신이 오자 정안평이 범수를 천거했다. 사신이 한 눈에 범수의 출중한 재능을 알아보고 진나라로 데려갔다. 범수는 진나라 소왕(昭王)의 부름을 받아 신임을 얻어 이후 낮은 벼슬에서부터 어느덧 가장 높은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 범수는 천하의 패권을 노리는 소왕을 위해 한(韓)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하고자 했다. 그러자 위나라에서 급히 대부 수가를 사신으로 보내 화친을 청하고자 했다. 수가가 진나라에 왔다는 소식을 듣자 범수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변장하여 수가를 만났다. 수가는 범수의 초라한 모습에 이전 일이 미안하여 솜옷 한 벌을 내주면서 말했다.

“내가 진나라의 재상 장록을 만나야 하는데 좀처럼 방법이 없으니 걱정이라네.”

그러자 범수가 자신이 장록의 집을 알고 있다며 길을 안내하였다. 장록의 집에 이르자 범수가 수가를 잠시 기다리게 한 후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수가가 아무리 기다려도 범수가 나오지 않았다. 궁금하여 문지기에게 물었다.

“아까 전에 이 문으로 들어간 허름한 차림의 사내를 혹시 아십니까?”

그러자 문지기가 대답했다.

“그 분은 우리 진나라의 재상 장록입니다. 혹시 무슨 일이십니까?”

그 말에 수가가 크게 놀라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수가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고는 대문 앞에서 사죄를 청하였다.

“이토록 높은 벼슬에 이른 것도 모르고 무례를 범했으니 부디 용서 하십시오!”

범수가 예전 원통함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수가를 죽이고자 했으나, 그래도 자신을 가련히 여겨 솜옷 한 벌을 건네준 성의를 생각해 살려주면서 말했다.

“너는 가서, 당장 위제의 목을 바치지 않으면 위나라를 몰살시키겠다고 위나라 왕에게 분명히 전하라.”

수가가 돌아가 그대로 전하자, 위나라 왕은 조회 자리에서 위제의 목을 베고 말았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있는 이야기이다.

청운직상(靑雲直上)이란 벼슬이 남보다 빠르고 높이 상승하여 재상에까지 이른다는 뜻이다. 누구나 억울하면 복수하고자 한다. 그래서 예부터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바로 복수의 지름길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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