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충청매일] “이제 여러분들과 북진본방은 동업자외다!”

마지막 장부까지 불구덩에 집어던지고 난 후 최풍원이 외쳤다.

“최풍원 천세!”

“북진본방 천천세!”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청풍 장마당이 떠나가는 듯 했다. 북진본방의 최풍원이 아니면 청풍도가에 빚을 지고 있던 고을민들이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요행수가 생겨 하늘에서 복덩이가 뚝 떨어진다면 몰라도 한 해 농사지어 식구들 입도 끄슬리지 못하는 처지에 몇 년씩이나 묵은 빚을 갚는다는 것은 씨도 뿌리지 않은 밭에 싹 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차에 북진본방의 최풍원 대주가 청풍도가로부터 자신들의 빚 문서를 넘겨받아 모두 태워 없애주었으니 고을민들이 천천세를 부르며 칭송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청풍장날이 파장할 때까지 장터에는 사람들마다 오늘 있었던 빚 장부 청산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④ 북진본방을 여각으로 확장하다

최풍원이 청풍장날 청풍도가를 성토하고 고을민들을 빚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난 다음부터 고을 인근의 임방들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임방이 활력을 찾는다는 것은 곧 북진본방의 매기도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최풍원이 고을민들의 빚을 대신 갚아줌으로써 의도한 것도 그 점이었다.

청풍도가처럼 수십 년이 넘도록 대를 이어가며 기반을 닦아온 장사꾼들은 어지간한 풍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북진본방처럼 이제 시작한 장사꾼들은 가시바람에도 풍나무 흔들리듯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더구나 장사라는 것이 사람 발길이 끊기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장사뿐만이 아니었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 발길이 끊기기 시작하면 그 집은 절대 흥할 수 없었다. 대문간이 닳도록 사람들 발길이 이어지는 집은 망하려고 해도 망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장사하는 집에 사람들 발길이 끊어진다면 그 집은 회생불능에 빠지는 것이었다. 청풍도가가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구설수에 올라도 오랜 세월동안 장사를 해오고 있는 것은 그래도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청풍도가에 드나드는 대다수 고을민들은 자신들이 지고 있는 빚 때문이었다. 좋은 일로든 나쁜 일로든 청풍도가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청풍도가가 번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북진본방으로서는 그 고리를 끊어야 했다. 그래서 최풍원은 청풍도가의 목줄을 죄기위해 청풍읍장으로 통하는 목마다 북진본방 휘하의 임방을 차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수년 동안 고을민들 편에 서서 그들의 물건에 제 값을 쳐서 사주고 고을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산들을 청풍도가보다 싸게 공급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구휼미를 풀어 그들을 구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청풍도가와 고을민들의 고리를 끊기는커녕 지금에 와서 더 큰 곤경에 빠진 것은 북진본방이었다. 청풍도가에 지고 있는 올가미 때문이었다. 고을민들이 북진본방의 은혜를 저버리고 청풍도가에 붙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벽창호라 해도 남의 것을 얻어먹고 모른 척할 고을민들은 아니었다. 그들도 어려울 때마다 자신들을 도와주는 북진본방의 고마움을 가슴 깊숙이 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형편이 되는대로 북진본방에 도움이 되도록 자신들의 마을에 있는 임방에 물산들을 넘겨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거래하는 물산들이 늘어나며 임방의 물량도 늘어났고, 지난 초봄에는 한양의 대궐로 들어가는 대량의 물량을 주문받은 북진본방에서 무사하게 물품을 공납할 수 있었다.

문제가 생겨난 것은 그 다음이었다.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오던 북진본방에서 대궐에 공납품을 납품했다는 소문을 듣게 되자 청풍도가에서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턱 밑에서 수염을 잡아당길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자 북진본방의 목을 죄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자신들이 올가미를 씌우고 있는 고을민들부터 고삐를 잡아채는 것이었다. 고을민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북진본방과 임방을 말라 죽이는 것이란 것을 오랜 장사를 통해 청풍도가에서는 알고 있었다. 청풍 관내의 고을민들 중에서 청풍도가에 빚을 지고 있진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청풍 관내 고을민들 전 재산은 청풍도가 재산이나 마찬가지라 할 정도로 갖은 빚 명목으로 잡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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