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충청매일] ‘시인의 책꽂이’ 연재를 어떻게 마칠까 고민하다가 글쟁이로 살아온 저의 뒷목을 소개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까 합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한국의 활쏘기’는 그래서 처음으로 나간 연재 글입니다. 앞으로 몇 차례 저의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지루한 연재를 마치려고 합니다.

전통 활쏘기는 신석기시대부터 무려 5천 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닌 영역인데도, 그리고 조선 시대 내내 나라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무기였는데도 오늘날에는 명맥이 끊길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돈도 명예도 안 되는 영역이다 보니, 학자도 장사꾼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1929년에 조선궁술연구회에서 ‘조선의 궁술’을 냈더군요. 천만 다행이라고 하고 그 책을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그 속의 내용이 제가 1994년 활터에서 마주친 현실하고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예컨대 활터에는 과녁이 있고, 궁사가 선 곳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 과녁거리가 145m인데, 150m도 아니고 왜 하필 145m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과녁 모양이 왜 저런 모양이고, 왜 과녁 크기가 저 크기냐? 역시 아무도 모릅니다. 당시 청주에서 활을 가장 오래 쏜 사람은 50년 정도 궁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기록을 해놓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해방 전에 집궁한 분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저런 궁금증을 물었습니다. 그렇게 한 5~6년 전국을 미친 듯이 쏘다녔습니다. 때로는 메모를 하고 때로는 소니 녹음테이프에 녹음을 했습니다. 그러자 활터의 모습이 그런 이유가 서서히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제가 찾아낸 그 내용은 이 세상의 책 어디에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내가 갖고 있는 이 자료를 다 불태워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을 뒤집으면 이 자료들을 엮으면 역사자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모와 녹취를 글로 옮겼습니다. 보고 들은 그대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글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히 퇴짜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활 이야기’를 내준 학민사로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뜻밖에 책을 내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나온 책이 ‘이야기 활 풍속사’입니다. 이 책은 처음 나온 이후 18년이 지난 지금도 초판이 다 팔리지 않아서 재판을 찍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낸 책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재판에 들지 못한 학술서가 되었습니다.

출판사는 이윤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그런데 18년이 지나도록 재판을 찍지 못한 학민사는 이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요? 충분히 예상했던 일입니다. 당시 출판사에서 전화로 적자 날 책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적자를 각오하고 낸 것이죠. 그때 저는 출판사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18년이 지난 지금에야 뒤늦은 감사를 표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학민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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