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충청매일] 최풍원이 김주태로부터 장부를 건네받고서 빙 둘러선 군중들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들의 목줄을 죄고 있던 외상장부외다. 이제부터 여러 고을민들은 청풍도가 사람들이나 김주태를 만나더라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소이다. 내가 오늘 여러분들의 빚을 갚고 이 장부를 받았소이다!”

최풍원이 장부 꾸러미를 머리 위로 높게 쳐들었다. 고을민들도 그것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럼 앞으로 우리는 청풍도가에 빌려먹었던 장리쌀을 북진본방에 갚으면 되는 것이오이까?”

“북진본방에서도 우리들에게 빚을 갚으라며 포악질을 할 것인가유?”

“최 대주 나리도 청풍도가처럼 아무리 갚아도 빚이 줄지 않는 이자에 이자를 쳐서 우리를 못살게 굴 것인가요?”

“그렇다면 호랭이한테 먹히나 늑대에게 먹히나 뭐가 다르오?”

빚을 갚아 좋기는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진 고을민들이 궁금증을 토해냈다.

“남의 것을 빌렸으니 당연히 갚는 게 도리 아닌가? 다만…….”

“그렇지. 갚는 게 당연하지만 아무것도 없는데 들이닥쳐 식구들을 호달구고 할 때는 피가 마르는구먼!”

“여기 모인 사람들 치고 그런 곤경을 안 당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런 곤경을 당하지 않으려면 굶어죽어도 청풍도가에서 빌려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살겠다고 빌려먹은 우리 죄가 더 크지!”

“갚으려고 해도 갚을 건덕지가 없어 어쩔 수가 없는데, 청풍도가처럼 호달구지 말고 뭐라도 구할 때가지 기다려만 줘도 감지덕지지!”

고을민들도 남의 것을 거저먹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다. 떼어먹겠다는 도둑놈 심보는 꿈에도 없었다. 남의 것을 빌려먹었으니 어떻게라도 갚아야 한다는 것이 고을민들의 심성이었다. 다만 여차저차한 이유로 갚을 형편이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보면 그기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일 년을 넘겼다. 그러면 원금에 이자가 붙고 이자에 이자가 붙어 눈덩이처럼 빚이 불어났고, 그만큼 청풍도가의 포악질은 떠올리기만해도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심했다. 고을민들은 자신들의 빚을 갚아준 북진본방이 청풍도가처럼 막무가내로 족치지 말고 조금만 사정을 봐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것이 오늘 청풍 장마당에 모여 청풍도가를 성토한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여러분 나는 장사꾼이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손해나는 거래는 하지 않소. 이번 거래도 마찬가지요. 내가 여러 고을민들의 빚을 갚아준 만큼 여러분도 내게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외다. 그렇지만 청풍도가 김주태처럼 여러분들을 발가벗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오! 여러분들이 여력이 생겨 팔 물건이 생기면 언제든지 여러분들이 살고있는 마을의 임방과 거래를 해주시오! 그게 여러분들이 북진본방에 진 빚을 갚는 길입니다.”

최풍원도 빚쟁이 행세를 하겠다고 사람들에게 공포했다. 그러나 청풍도가처럼 고을민들을 착취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최풍원의 발언에 김주태가 똥 먹은 표정으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최풍원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북진본방은 여러 고을민들을 동업자로 생각하외다. 고을민들이 없으면 북진본방도 존재할 수 없소이다. 여러분들이 곤궁에 빠졌는데 북진본방이라고 잘될 리 없소이다. 우리 북진본방은 여러 고을민들이 도와주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빚쟁이로 취급하면서 동업자라며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소이까? 하여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 고을민들이 보는 앞에서 이 모든 빚 장부를 불질러버릴 것입니다!”

최풍원이 운집한 군중들에게 들고 있던 장부 꾸러미를 들어 보이며 불태워버리겠다고 공언했다.

“공중으로 하는 말이지유, 증말로 빚 장부를 태워버린다는 말이유?”

“그걸 태워버리면 우리한테 어떻게 빚을 받겠다는 거요?”

고을민들은 최풍원의 말을 들으면서도 믿지 않았다. 산더미같이 쌓아놓았던 육백 섬이나 되는 쌀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 장부만 움켜쥐고 있으면 언제까지나 고을민들을 종처럼 부릴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최풍원은 태워버리겠다는 말이었다.

“강수야, 불을 붙이거라!”

최풍원의 명령에 강수가 쌓아놓은 장작에 불을 붙였다. 금새 불꽃이 너울거리며 활활 타올랐다. 최풍원이 고을민들의 빚 장부를 한 권씩 한 권식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던졌다. 장부가 타서 없어질 때마다 모여 있던 군중들이 함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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