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충청매일] 김주태가 그렇게 봉변을 당하고 있는데도 청풍도가 상인이나 무뢰배들 중 어느 누구도 앞으로 나서서 막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가나 들어가나 평소 김주태의 됨됨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또 성난 사람들 분위기에 겁을 먹고 어디론가 꽁지를 뺀 까닭이었다. 오늘 장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제껏 보아왔던 고을민들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고을민들은 포악질을 떨어도 죽은 듯이 받아들이고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순딩이들이었다. 그러던 사람들이 모이니 그 기세가 봇물 터지듯 무서웠다. 하기야 지금까지 청풍도가에서 고을민들을 착취하고 주리를 틀어온 것은 관아가 뒷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을민들은 자신들이 도가에 지고 있는 빚 때문에 죄인처럼 시키는 대로 죽은 듯 따랐지만, 청풍도가 뒤에 도사리고 있는 관아가 더 두려워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 더 컸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청풍도가 근처만 지나도 오줌을 지리던 사람들이 귀신처럼 무서워하던 김주태를 보고도 욕지거리를 서슴지 않았다.

“니 놈이 뭔 양반이라고 탕건 차림이더냐! 맨 상투도 아깝다!”

어떤 사람은 김주태의 탕건을 벗겨 내동댕이치고 상투를 잡아채기도 했다. 개중에는 김주태가 입고 있는 바지저고리에 침을 뱉는 사람들도 있었다.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생각지도 못한 짓들을 거침없이 저지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제 그만들 하시게. 아무리 원수가 졌다하나 사람을 그리 대하면 되겠소이까?”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던 나이 지긋한 노인이 사람들을 말렸다.

“그간 우리가 김주태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당장 이 자리에서 각을 떠도 시원찮소!”

“사람이 어찌 받은 대로 다 갚으며 살 수 있겠소. 누군가는 억울해도 용서를 해야 세상이 편해지지 않겠소이까?”

“영감님, 하늘에서 부처가 떨어졌소이다! 지금 누구 편을 들고 있는 거슈?”

김주태의 탕건을 벗겨 내동댕이쳤던 사람이 눈알을 부라리며 노인에게 대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젊은 사람이 노인께 그러면 쓰겄는가?”

“그려, 세상이 아무리 막돼가도 그건 안 되지!”

주변사람들이 젊은이를 나무랐다.

“그렇소. 노인장 말을 들으시오! 우리는 도가에 빚을 갚고 장부만 돌려받으면 그뿐이오. 그러니 사람은 해하지 마시오!”

운집한 군중들 앞에서 이제껏 부추기던 양평 임방주 김상만도 노인의 말을 따르자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여기에 있는 섬들을 안으로 모두 옮깁시다!”

혼란스럽던 분위기가 수그러들자 광의리 임방주 김길성이 사람들을 독려해 쌀 섬들을 청풍도가 안으로 들이자고 했다. 청풍도가에 갚을 쌀이니 도가 안까지 옮겨야 깔끔하게 마무리가 될 일이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벗어 던져두었던 지게를 챙겨 쌀 섬을 지고 열을 지어 날랐다. 한참만에야 도가 앞 장마당에 쌓여있던 쌀더미가 모두 청풍도가 안으로 옮겨졌다.

“여러분, 북진본방 최풍원 대주요!”

김길성이가 쌀 섬들을 모두 옮겨놓고 다시 장마당에 모인 구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최풍원이 동몽회원들의 비호를 받으며 군중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러더니 김주태 앞으로 다가갔다.

“서방님, 이제 다 끝났습니다. 그걸 내게 넘기시지요?”

최풍원이 장부를 넘기라고 했다.

“네 놈이 이렇게 나를 능멸하고도 무사할 성 싶으냐?”

김주태가 최풍원을 노려보았다.

“서방님, 다 끝난 문제요! 오늘 이 장마당에서 원한 쌓인 사람들에게 맞아 반병신이 안 된 것만 해도 천운으로 아시오. 더 봉변당하기 전에 어서 내놓으시오!”

최풍원이 장부를 내놓으라며 겁박했다.

“김주태는 장부를 내놓거라!”

“손모가지를 작신 뿌러뜨리자!”

“이 참에 김주태 모가지를 꽉 밟아버렷!”

“아직도 정을 못 다셨구만!”

이를 지켜보던 군중들이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서방님, 저들에게 지금 풀어놓으면 영락없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 것이오! 어쩌시겄소?”

최풍원이 다시 다그쳤다.

“내가 반드시 네 놈을 요절 낼 것이니 기다리거라!”

군중들이 다시금 들썩거리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위협하자 김주태가 마지못해 품고있던 장부 꾸러미를 최풍원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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