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충청매일] “모르는 소리 하지도 말거라! 몇 배를 받아 챙겼으면 그걸 내 혼자 다 먹었겠느냐? 거기에 눈독을 들이고 뜯어먹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김주태가 택도 없는 소리 하지도 말라며 최풍원의 이야기를 들으려하지도 않았다.
“강수야!”
최풍원이 밖을 향해 강수를 불렀다.
“예, 대주!”
“나귀에 실린 괘를 들여 오거라!”
강수와 언구가 양쪽에서 괘를 받쳐 들고 끙끙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머지 괘도 청풍도가 사람들이 땀을 빼며 들고 들어왔다.
“모두 열거라!”
최풍원의 말에 강수가 괘 뚜껑을 열었다.
“이건 엽전이 아니냐?”
김주태가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두 개의 괘 안에는 차곡차곡 쌓인 엽전 꾸러미가 가득 들어있었다.
“모두 일천 냥입니다.”
“이걸 왜 가지고 왔느냐?”
김주태가 태연한 척 가장을 하며 물었다.
“이걸 모두 서방님께 드릴 겁니다!”
“무슨 연유로 이걸 내게 준다는 말이냐?”
“대신 서방님은 밖에 쌓여있는 쌀과 이 돈을 받고 마을 사람들 목줄을 죄고 있는 장부를 내게 넘겨주시오!”
최풍원이 김주태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관아 아전과 고을 원님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니라.”
김주태가 거액의 돈괘를 보자 하지 말아야할 소리까지 은연중에 내뱉었다.
“서방님 그러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요. 이 두 개의 괘 중 하나는 서방님이 챙기시고 하나는 관아에 바치시면 어떻겠습니까?”
“으흠!”
욕심 많은 김주태가 최풍원의 제안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고 깊은 한숨만 쉬었다.
“서방님이 장부를 모두 넘겨주신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요!”
“가만히 있지 않으면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김주태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최풍원이 던지는 미끼에 귀가 솔깃해져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물었다.
“서방님이 넘겨주신 장부로 저도 고을 사람들을 틀어쥐어야지요. 그리고 그걸로 쥐어짠 물산들을 어찌 제 혼자만 먹겠습니까요. 서방님은 이제 그런 것으로 돈을 벌어들이지 않아도 더 큰 장사가 있지 않습니까요. 그러니 그런 잔챙이 것은 저도 먹고 살게 제게도 좀 밀어주시오.”
최풍원이 쥐어짜는 소리를 하며 사정을 했다.
“오호라, 그래서 네 놈이 사람들에게는 빚을 갚아주는 척 하며 내게 돈괘를 가져 왔구나! 나는 네 놈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그러는지 의심을 했었다.”
김주태가 그제야 자초지종을 알았다는 듯 한결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서방님 덕분에 지도 앉아서 쉽게 돈 좀 벌어볼랍니다!”
“어리숙한 저놈들을 호달궈 돈은 버는 것은 어린애 손에 쥔 엿가락을 빼앗는 것보다도 쉽지. 한 번 코를 꿰어놓으면 평생을 울궈먹어도 돈줄이 끊기지 않지. 쉽게 돈을 벌게 해주는데 이것 같고는 어림없지 않겠느냐?”
최풍원이 속내를 내보이자 김주태는 더 노골적으로 욕심을 부렸다.
그때 도가 안마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김주태는 빚을 받아라!”
“청풍도가는 우리 빚을 탕감해라!”
그 소리에 동조하듯 울 너머 장마당에 모인 사람들도 떼를 지어 함성을 질렀다.
“도가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자!”
“도가 곳간을 부수고 배곯는 고을민에게 쌀을 나눠줍시다!”
“도가에 쳐들어가 똥을 퍼붑시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더욱 격렬해졌다. 청풍도가 안팎은 성난 고을민들의 고함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김주태가 있는 방안에서도 큰소리를 쳐야 들릴 정도로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격앙되었다.
“저 무지랭이들이 순하기는 하지만 한 번 성이 나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쥐뿔도 가진 것 없는 저것들이야 뭐 아쉬울 게 있겠습니까요. 소경 팔매질하듯 그냥 내지르면 큰 손해 보는 것은 서방님처럼 가진 것 많은 부자입니다요. 지금 대문 밖 마당에는 수백 명의 고을민들이 모여 있습니다. 만에 하나 저들이 대문을 부수고 쳐들어와 곳간 문을 뜯고 도가에 불이라도 지른다면 고스란히 그 손해는 누가 보겠습니까요? 서방님입니다!”
최풍원이 김주태 편을 드는 척 하며 엄포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