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풍원이 당나귀 양쪽 옆구리에 실린 괘를 짚으며 무뢰배들에게 물었다. 그리고는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모여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빨리 문을 열라고 다그쳤다. 도가 앞에 몰려있는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대문을 향해 몰려올 것처럼 열에 받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괘는 고을 원님에게 들어갈 귀한 것이다. 너희가 대문을 열지 않아 잘못되는 날에는 볼기짝이 걸레짝이 될 것이다!”

무뢰배들이 머뭇거리자 강수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대문 앞에 운집한 사람들은 함성을 질러대고 대문 앞에서는 엄포를 놓으니 무뢰배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어허, 이놈들이 뭘 주저하느냐? 이 물건을 잃어버리면 전부 네놈들 책임이다!”

최풍원이 틈을 주지 않고 다시 호통을 쳤다. 청풍도가 문을 지키고 있는 무뢰배들이 혹여 일이 잘못되어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겁을 먹고 대문을 열었다. 최풍원과 언구, 그리고 강수가 나귀를 끌고 북진도가 대문을 넘어섰다. 일행의 등 뒤에서 다시 빗장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주님, 저기를 보시오!”

강수가 가리키는 청풍도가 안마당을 보니 난장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지고 갔던 지게들과 쌀 섬들이 사방에 나뒹굴고, 땅바닥에도 여기저기 하얀 쌀들이 모래처럼 흩어져있었다.

드잡이를 했는지 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옷매무새가 꼴 사나운 몰골이었고 열댓 명은 어디가 상했는지 신음소리를 내며 맨땅에 그대로 널브러져있었다. 또 몇몇은 참바에 묶인 채 봉당 아래 꿇려져 있었다. 그 주위를 청풍도가 무뢰배들이 눈알을 휘번뜩이며 둘러싸고 있었다. 무뢰배들의 기세에 눌려 주눅들은 사람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멀건한 표정으로 흙바닥에 주저앉아 앉아있었다. 최풍원이 마을사람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뭣하는 놈들이냐?”

마을 사람들을 호달구던 무뢰배들이 최풍원을 발견하고 쌍심지를 켰다. 그러더니 최풍원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심산인지 주먹을 쥐고 쳐들었다. 그때 나귀 고삐를 쥐고 뒤따르던 강수가 최풍원 앞으로 나서며 막아섰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무뢰배의 팔을 낚아채 비틀었다. 무뢰배가 너무나 고통스러운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만 딱딱 벌렸다. 워낙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바로 곁에 서있던 무뢰배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아채지 못하고  뻔히 쳐다 볼뿐이었다.

그러다 사태를 파악하고 동료를 구하려고 강수에게 달려들었다.

강수가 무뢰배의 비튼 팔을 잡은 채 발끝으로 무뢰배의 턱을 걷어 올렸다. 그저 산보를 하듯 편안한 몸놀림이었다. 달려들던 무뢰배가 서너 보는 날아가 마을사람들 눈앞에 나가떨어졌다.

“성가시게 굴지 말고, 너희 주인을 만나러왔으니 냉큼 알리거라!”

최풍원이 용무를 알렸다.

“쌀을 내준 북진본방 사람이네!”

“아까 증서를 받아오라 한 사람이네!”

오합지졸처럼 풀죽어있던 사람들이 최풍원을 보고는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것 보시오! 빚을 갚고 증서를 받아가지고 가야하는데 빚을 완전히 청산해야 해준다니 어찌해야 좋소?”

“이것저것 박박 긁어모아 빚진 것 얼추 갚고 냉거지 좀 남은 것을 오늘 이 쌀로 갚으려 했더니 그동안에 늘어난 이자가 있다면서 모두 한꺼번에 갚아야한다니 이런 억울할 때가 어디 있소이까? 한 삭도 지나지 않아 원전보다 이자가 늘어나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으니 화수분이 있어도 도가 빚은 갚을 수 없을 거요!”

“우린 도가놈들 손아귀에서 절대 못 벗어나오!”

최풍원을 보며 사람들은 절망적으로 말했다. 차라리 희망이라도 없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그냥 견디며 살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젠 빚을 갚고 허리 좀 펴며 살 수 있겠다고 잔뜩 부풀었다가 기대가 꺾이자 좌절감은 배가 되었다.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쌀을 도가 안마당에 뿌려대며 난리를 피운 것이 사람들의 지금 심정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내가 문제를 해결할 테니 염려 말고 여러분들은 흩어진 지게와 섬들을 챙겨 정돈을 해 앉아 있으시오! 그리고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한 덩어리가 되어 따라주시오. 억울하다고 해서 절대로 함부로 행동하지 마시오!”  

최풍원의 지시가 떨어지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흩어져 있는 자신들의 물건을 챙겨 마당 가운데로 모여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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