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지고 간 사람들이 빚을 갚으려하는데 도가 놈들이 며칠 상간에 오른 이자를 더 내놓아야 한다며 받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일 뿐이었다. 청풍도가에서 그깟 이자 몇 푼을 운운하는 것은 어떻게라도 사람들 코를 꿰어두고 자신들의 의도대로 부려먹기 위한 수작이었다.

“그래, 저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답디까?”

“빚을 갚고 증서를 받아 나온 사람들 얘기로는, 빚을 받아주지 않자 화가 난 사람들이 도가 마당에다 쌀자루를 내동댕이치고 일부는 섬을 풀어 쌀을 땅바닥에 쏟아버리며 항의를 하고 있다고 합디다. 난동을 피우다 무뢰배들에게 두들겨 맞아 상한 사람도 있다고 합디다. 대주, 난리도 아닌가 보우다!”

박한달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지금도 계속 그러고 있답디까?”

“그러고 있답니다.”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빚을 갚게 되었다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청풍도가의 무리한 요구로 좌절되자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지금 누구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우선 수습부터 하는 것이 먼저였다. 문제는 수습을 하려면 청풍도가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어떻게 빨리 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내가 도가 안으로 들어가겠소!”

“형님, 그건 절대 안 되우!”

최풍원이 직접 청풍도가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자 도식이가 강하게 막아섰다. 도식이가 최풍원을 막아선 것은 혹여라도 청풍도가의 무뢰배들에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청풍장날인 오늘 도가 앞에 모여 성토를 한 것이나 도가 안에서 일어난 분란 모두가 북진본방에서 만든 일이고 그 중심에 최풍원이 있다는 것을 청풍도가에서도 모두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최풍원이 그곳으로 들어간다면 어떤 식으로라도 해코지를 가해올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었다. 섶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무모한 일이었다.

“대주, 그건 대방 말이 맞소이다. 그러니 달리 방도를 찾아보십시다!”

김상만도 말리고 나섰다.

“대주, 도가로 들어가는 대문도 모두 안에서 닫아 걸었다고 하외다!”

김길성이가 달려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알렸다. 뭔가 돌아가고 있는 조짐이 좋지 않았다. 청풍도가에서 뭔가 모사를 꾸미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운집해 자기들의 코앞에서 성토를 하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도 의심스러웠다. 예전 같으면 벌써 붙잡아다 곤장을 치든가 무뢰배들을 풀어 훼방을 놓았을 터였다. 그런데도 오늘은 이상스러우리만큼 사람들이 하는 양을 잠자코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분명 무슨 꿍꿍이 수작을 벌이려는 것이 분명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최풍원은 잠시도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청풍도가에서 어떤 일을 벌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최풍원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도식이 말대로 당장 치고 들어가 청풍도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대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든 청풍도가에 진 마을 사람들의 빚을 모두 청산하고 난 다음 그 도모해야 할 일이었다.

“강수야, 나귀를 가져오너라!”

최풍원이 아침에 북진에서 출발할 때 데리고 온 당나귀를 몰고 오라 했다.

“형님,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도식이가 불안해서 물었다.

“내가 언구와 강수를 데리고 도가로 들어가 담판을 지을 것이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거든 임방주들께서는 밖에서 각기 자기 마을사람들을 독려해 청풍도가를 성토하고, 대방은 동몽회원들을 동원해서 사람들을 보살피도록 해라!”

최풍원이 임방주들과 도식이에게 당부를 하고 나귀를 몰고 닫힌 도가 대문 앞으로 다가갔다. 무뢰배들이 최풍원을 가로막았다.

“안으로 들어가 김주태에게 최풍원이 만나자 한다고 전하거라!”

“우리 도가 김주태 어르신은 왜 만나자 하슈?”

최풍원이 김주태에게 전갈을 넣으라 하자 무뢰배들이 연유를 물었다.

“네놈들과 입씨름할 일이 아니니 냉큼 들어가 전하기나 하거라!”

“볼일을 얘기하슈! 그렇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소!”

“니놈들이 혼구멍이 나봐야 정신을 차릴 테냐! 이 안에 든 물건이 뭔지 아느냐. 너희 도가에 긴요한 것이다. 저기 성난 사람들 무리가 보이지 않느냐? 만약 너희들이 문을 열지 않아 이 물건이 혹여 저들 손에 빼앗기기라도 하면 모가지가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