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기 교수의 티베트 기행 ④]-메콩강 상류 황톳빛 강물 ‘장관’

   
 
  ▲ 설산아래 청정지역. 유채꽃밭가로 하늘로 향하는 길이 뚫려 있다.  
 

2004년 7월29일 아침, 좀 가는가 싶더니 전자만산이라는 또 하나의 큰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길이 있을것 같지 않은 험산이다. 몇십분이 지났는데도 돌고 도는 에움길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1천m도 훨씬 넘을 것 같은 바닥에는 황토빛 강물이 굽이쳐, 참 장관이구나 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해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산길은 수평을 잡기 위해 이렇게 돌고 도는 거라는 전문가적 설명을 하던 장사장도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놀래 산소통을 찾으며 반대편에 앉은 정선생과 자리를 바꾸자고 한다. 아예 안보여야 속이 편하겠다는 심산이다. 이 고개가 해발 4천659m의 전자만산 고개다.

몇 시간을 달려오는데도 아가는 차량은 숨이 차 허덕이는 화물트럭 몇 대 뿐으로 한적하다.

둑어둑할 무렵 이당(理塘)에 도착, 더운물에 목욕을 할 수 있는 여관을 찾으나 마땅찮다.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그래도 괜찮다 싶은 고성빈관에 투숙하기로 한다. 차에서 내려 짐을 옮기다 보니 이곳이 낯이 익은게 아닌가.

방에 들어서니 2000년에 이 호텔 이방에서 하루를 묵어간 생각이 난다. 그때는 북쪽 도부(道孚)로 부터 운귀고원(雲貴高原)을 넘어 시내로 접근했고 오늘은 동쪽에서 들어 왔기에 처음엔 알아볼 수 없었다.

구조는 그때와 같아 거실을 가운데 두고 방이 세개에다 세면실이 구석에 있어 흡사 아파트 같은 호텔방이다. 바뀐거라곤 샤워실 가리개가 설치돼 있는 것뿐이다. 물을 틀어 보니 계속 냉수만 나오기에 항의를 하니 더운물 안나와 못 자겠으면 딴데로 가보라는 퉁명스런 반응이다. 아마 손 안대고 뺨때리는 재주 있다면 이런 때를 위해서 큰 돈 주고라도 배워 뒀을 것이다.

한참 뒤 좀 심했나 싶었던지 전기곤로와 큰 물통을 가져와 그나마  대충 덥혀 씻는 시늉만 냈다.

추위에 시달리다 좀 일찍 잠이 깨 밖이 심상찮아 나가보니 질척질척 가랑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비포장 산길은 산사태 등에 의해 일정대로 갈 수 있을지 예측하기가 어려워 걱정과 동행하게 된다.

일행 모두가 잠을 설친 관계로 몸 상태가 찌뿌드드해 7시가 넘어서야 출발한다. 산골이라 그런지 7시도 새벽이라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었는데도 추위가 파고든다.

물론 차량의 히터는 언제 틀어 봤는지 기억에도 없을 것 같다. 그저 더우면 차창 열고 추우면 닫을 뿐, 멈추지 않고 달려 주는 것만으로도 황감할 뿐이다. 하기야 문명의 이동이 늦은 곳으로 가는데 이 정도면 호강이 요강 타고 노는 꼴이라고 자위해 본다.

어느 정도 산길을 올라서면서 모퉁이를 지나니 차창을 긋던 빗줄기는 그치고 대신 눈가루가 흩날린다. 새벽안개 사이로 보이는 산야는 줄곧 눈이 내렸는지 안개속 푸른 초원에 흰 눈이 옅게 쌓이고 홀현홀몰하는 대 자연의 조화로 신비감 마저 준다. 누가 밟아 보기는 고사하고 눈길 한번 준 것 같지 않은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인 새벽의 대자연은 이국 나그네의 오감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입맛이나 눈길은 한번 인이 박히면 떨쳐 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해서 그런지 필자는 이런 풍광명미(風光明媚)를 만나면 떠나기를 꺼려했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가고 싶은 생각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따라서 필자는 이런 풍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듭 되더라도 단 한번도 볼 장 단 본 풍경이라고 여긴 적이 없었다.

점심때가 가까워 오면서 날씨는 다시 쾌청해 하늘은 시리도록 쪽빛으로 짙어진다. 초원 한켠에 차를 세우고 먼 설산에 대고 셔터를 눌러대며 오전의 젖은 생각을 햇볕에 말린다.

뭉텅이 솜같은 구름에 얼굴도 씻고 바람냄새 맡으며 자유를 만끽해 본다.

일행 누구도 이 넓은 땅을 보고도 평당 가격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 편하게 들풀과 들꽃들의 속삭임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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