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증서를 받아 북진본방에서 다시 우리 목을 조르려는 것 아니오?”

“그렇다면 청풍도가에 있던 빚이 북진본방으로 넘어가는 것이나 뭐가 다르단 말이오?”

“둘러치나 매치나지!”

“그럼 지가 진 빚을 남이 갚아주는데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거저 먹으려한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지.”

“맞구먼. 남의 것을 빌려먹었으면 어떻게라도 지가 갚아야지 요행수를 바란디야?”

“얼마나 찢어지게 살았으면 그런 생각까지 하겠는가?”

최풍원이 자신들을 대신해 청풍도가 빚을 갚아주겠다는 말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서로들 속내를 털어놓으며 왈가왈부했다.

“빚이 어디로 넘어가든 고리라도 좀 감해줬으면 좋겄네!”

“고리는 고사하고 빚 갚으라고 우리를 족치며 주리만이라도 틀지 않았으면 좋겄네!”

“청풍도가에 한 번 물리면 빚에서 헤어날 수 없어!”

“난, 청풍도가 문지방만 봐도 경기가 인다네!”

또 한 머리 사람들은 청풍도가에 진 빚으로 그동안 당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저놈들만 안 본다면 나는 어디로 넘어가도 상관없어! 어디로 넘어가든 고래 심줄보다도 질긴 청풍도가 놈들 같지는 않겠지.”

“그동안 북진본방에서 우리 고을민들에게 한 일들을 보면 우리 빚이 그리로 넘어간다 해도 청풍도가 놈들처럼 악독하지는 않을 거구먼!”

“그려. 청풍에 살며 북진본방 덕을 보지 않은 사람은 별반 없을 거여!”

설왕설래하며 제각각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그동안 북진본방에서 해온 일들을 떠올리며 최풍원의 계속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들, 지금부터 각 마을의 임방주들께 확인을 받는 대로 이 앞으로 와 쌀을 지고 청풍도가로 들어가 빚을 갚고 증서를 받아오시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최풍원이 다시 한 번 더 방법을 일러주었다.

“광아리 사람들부터 이 앞으로 나오슈!”

광의리 김길성 임방주가 자신의 마을 사람들부터 쌀더미가 쌓여있는 앞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김길성이 자신의 마을사람이 맞는가를 일일이 확인하고는 강아동 관호 두 섬, 솔무정 광출이 두 섬 반, 무골 만근이 한 섬 반, 딱발구랭이 봉갑이 석 섬, 계장골 필남이 한 섬 하며 청풍도가에 갚을 쌀을 알려주었다. 광의리 사람들부터 쌀을 지게에 싣고 청풍도가로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연론과 양평 사람들이 각 임방주들의 확인을 거친 다음에 쌀을 지고 줄줄이 들어갔다. 청풍도가 문 앞에는 무뢰배들이 잔뜩 인상을 쓰며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대주, 괜찮겠슈?”

동몽회 대방 도식이가 청풍도가 안쪽을 바라보며 불안해서 물었다.

“빚을 갚겠다고 하는데 별일이야 있겠는가?”

“워낙에 잔대가리가 승한 놈들이라 무슨 일을 꾸밀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요.”

“그렇기는 하다만…….”

도식이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러해서 최풍원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오늘 일이 별 탈 없이 무난하게 마무리되어야 했다. 만약 서로 간에 충돌이라도 생겨 불상사가 생긴다면 청풍도가보다는 북진본방이 겪을 파장이 더 클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청풍도가는 관아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관아에서는 청풍도가의 역성을 들 것은 불 보듯 분명했다. 그것을 피하고 소기의 목적을 이루려면 어떤 경우라도 청풍도가에 빌미를 주는 일은 피해야 했다. 자신들의 턱 밑에 사람들이 몰려 성토를 하고 있는데도 청풍도가에서 잠자코 있는 것은 어쩌면 북진본방에서 자신들을 건드려주기만을 기다리며 날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매사 조심해야 할 때가 지금이었다. 최풍원은 도식이에게 각별히 주변 단속을 하라 일렀다.

“대주, 문제가 생겼소이다!”

연론리 박한달 임방주가 최풍원을 향해 헐레벌떡거리며 달려왔다.

“왜 그러시오?”

“지금 청풍도가 안마당에서 난리가 났답니다!”

“무슨 일로 난리가 났답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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