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충청매일]

“그 뜻이란 게 뭐유?”

“거기 쌓여 있는 쌀은 뭐요?”

“아까 당신이 했던 말처럼 그 쌀이 참말로 고을민들이 청풍도가에 진 빚을 갚아줄 쌀이오?”

대전리 인삼 농사꾼 언구가 청풍도가를 성토할 때 김상만이 했던 말을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다시 물었다.

“맞소! 여기에 쌓아놓은 쌀은 모두 당신들의 빚을 갚을 쌀이오!”

김상만이가 재차 확답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빚을 갚아준다고 하는데 당연히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러야하는 것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무덤덤해 했다.

“우리 빚을 갚아준다 하고 우리 코를 더 꿰려고 하는 수작 아니오?”

“아무리 그래봐야 이젠 더 이상 우리에게 긁어갈 것도 없소이다. 뭘 더 괴롭히려고 그딴 짓을 한단 말이오?”

“뭣 때문에 우리 같은 것들 빚을 갚아준단 말이유.”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가 보재.”

자신들의 빚을 갚아주겠다는 말에도 사람들이 시큰둥하게 반응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은 누구의 말도 믿지 않았다. 더구나 누군가가 자신들을 도와주겠다는 말은 전혀 들으려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구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공것은 없었다. 이제껏 자신들의 수족을 직접 놀리지 않고 얻은 재물은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그것은 자신들을 더 부려먹기 위한 미끼를 던지는 것이었다. 관아에서 그리했고 부자들이 그리했고 지주들이 그리해왔다. 그들이 무언가 은혜랍시고 베풀 때는 반드시 그것의 몇 배를 더 빼앗아갔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그 맛을 알고, 소금 먹은 놈이 물을 들이키는 법이었다. 평생을 살며 단 한 번도 남에게 무엇을 거저 받아본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것을 준다고 하니 우선 의심부터 하는 것이 당연했다. 김상만의 말을 듣고도 경계부터 하는 것은 몸에 밴 그들의 습성이었다. 그러다 혹여 그게 정말로 공것이라고 하면 은근슬쩍 다가가거나 잘못을 빌고 머리를 조아리면 될 일이었다. 어떻게 하든 먹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것이 힘없는 사람들이 이제껏 이 땅에서 목숨이나마 부치고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다.

“여러분들, 여기 쌓아놓은 쌀은 북진본방에서 청풍 인근 여러 고을민들이 도가에 진 빚을 갚아주려고 내놓은 쌀입니다!”

김상만이 심드렁하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청풍도가에 빚지고 고초를 당하고 있는 여러분들을 위해 최풍원 대주가 사재를 풀어 예까지 가져온 쌀이오!”

광의리 김길성 임방주가 김상만을 거들며 소리쳤다.

“북진본방에서 우리들에게 수차례 도움을 준 것은 잘 알고 있소이다. 거기도 도가처럼 장사하는 곳이라던데, 한두 번도 아니고 무슨 연유로 장사꾼들이 돈도 안 생기는 일을 하단 말이오이까?”

“맞소! 그 덕에 보릿고개도 지우 넘고 봄나물을 뜯어 판 양식으로 뱃꾸리를 채우고 있는데, 또 무슨 양식을 저리 많이 내놓았단 말이유?”

청풍도가 앞에 운집해있던 사람들이 북진본방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쌀을 내놓은 이유를 물었다.

“그 연유를 우리 최풍원 대주에게 직접 들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김상만이 최풍원 대주에게 그 이유를 직접 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사람들의 의향을 물었다.

“좋소!”

“그럼, 북진본방 최풍원 대주를 이 자리로 모시겠소이다!”

운집한 사람들의 뜻에 따라 김상만이 땅바닥으로 내려서며 최풍원을 앞으로 불렀다. 사람들 틈에 섞여있던 최풍원이 일어서자 동몽회원들이 주변으로 모여 들며 잽싸게 둘러쌌다. 그리고는 최풍원을 쌀더미 앞으로 안내했다. 도식이와 강수가 최풍원의 양쪽에 바싹 붙어 주변을 살폈다. 최풍원이 천천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북진본방 최풍원이외다. 지금까지 여러분들 틈에서 여러분들이 하는 말을 모두 들었소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여기 앞에 있는 쌀은 여러분들의 빚을 갚을 쌀이오. 그리고 여러분들도 얘기했지만, 내가 대신 빚을 갚아주지만 공짜는 아니오이다. 이제 곧 청풍도가에 빚을 진 사람들은 앞으로 나와 이 쌀을 지고 청풍도가로 들어가 빚을 갚으시오. 그리고 도가에서 빚을 청산했다는 증서를 받아다 자기 마을 임방주들에게 갖다 주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입니다."

최풍원이 운집한 사람들에게 쌀의 용도와 어떻게 빚을 갚을 것인지 방법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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