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칠규는 도가가 왜 필요한지도 알 수 없었다. 도가라는 것이 없었어도 이제껏 장사만 잘해왔다. 그런데 뭣 때문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물건을 떼다 팔던 사람들도 성가시게 만들고 사는 사람들도 예전보다 비싼 값에 물건을 사게 하는 청풍도가의 행태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도가의 본래 명칭은 도고였다. 그러니 청풍도가가 아니라 청풍도고라고 불러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도고라는 이름이 말하기가 불편해서인지 사람들은 그냥 도가라고 불렀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도고가 백성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개똥이를 소똥이라 부른다 해도 그깟 이름이야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도고의 시작은 청풍도가 같은 장사꾼들의 집합소가 아니었다. 도고는 본래 공인들이 공납품을 미리 사서 쌓아두었던 창고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창고를 이르던 말이 사람들의 집합체로 바뀌게 된 것은 창고의 주인인 공인이란 사람들의 영향이 컸다. 공인은 한양의 궁이나 관부, 팔도 각 고을의 관아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공납청부업자들로, 이들은 공물주인·공주인·공계인·각사주인·주인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들 공납청부업자들을 대동법 이후 새로 나타난 상인 계층들이었다. 애초 조선의 세금은 각 지역의 특산물을 현물로 바치던 공물제였다. 이때도 공물을 중간에서 방납하는 상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제도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자 팔도의 모든 특산품을 쌀로 통일해서 바치데 한 것이 대동법이었다. 대동법 실시 이후 방납하던 기존의 상인들 대신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특권을 지닌 조달상인들이 활동하게 되는데 이들이 공인이라 부르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신분은 각 관사에 소속된 하급관리나 하인, 토호, 부상을 비롯하여 여러 계층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도고를 차려놓고 관아에 물품조달을 빙자하여 강제 매입하거나 독점매입하였다. 이들은 필요하면 관권을 동원하였고, 공인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농민이나 수공업 생산자들을 억압하고 수탈해 싼값으로 수매하여 싼값에 납품하였다. 이 뿐만 아니었다. 이들은 생산자들에게 원료나 공임을 미리 주거나 수공업자를 고용해 품값을 주고 물품을 생산하게 하기도 하였다. 이들 도고의 공인들은 처음에는 한양의 사람들만을 선임하였으나 사상인인 경강상인들을 중심으로 확대되며 점차 팔도의 장사꾼들에게도 퍼져나갔다. 결국 도고의 목적은 애초와 달리 상인들 자신들의 이득을 최대로 높이기 위한 계모임이었다. 며느리 자라 시어머니 된다고 청풍도가에서 하는 짓거리도 이런 도고에서 배워 제 뱃속을 채우려고 고을민들을 착취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뒤에는 서로 공생하는 관아의 뒷배가 있었다.

“마을에 제를 올려도 각기 추렴을 하는데, 도가에 들어오는데 맨 입으로 들어오려고 했는가?”

외려 청풍도가 사내놈이 황칠규보다 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입회비는 얼마요?”

“쌀 닷 섬이오!”

“닷 섬이오?”

황칠규는 깜짝 놀랐다.

“쌀 닷 섬이면 평생 도가에서 물건을 받아 팔 수 있는데 그게 아깝단 말인가?”

황칠규는 기껏해야 쌀 몇 말이면 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가라는 곳에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칠규가 장사를 하는데 도가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가에 입회를 한다 해도 발품을 팔며 소금을 지고 다니며 팔아야 하는 것은 황칠규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 입회를 하는데 쌀 닷 섬이라면 그것은 공중에 돈을 내버리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런데도 황칠규가 입회를 하려한 것은 당장 서창나루에서 소금을 받을 수 없고, 서창 인근 사람들이 이전보다 비싸게 사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소금을 받아다 예전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모아두었던 것을 톡톡 털어 쌀 닷 섬을 도가에 입회비로 냈어유. 그런데 처음 약조와는 전혀 다른 거라. 처음 내게 입회를 권유하며 약조할 때는 입회비만 내면 다른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염세라는 것을 새로 만들어 소금을 떼러 도가에 올 때마다 그것부터 선수로 떼고 내주는 거요.”

“그게 얼마유?”

“소금 한 섬마다 한 말이요.”

“소금 한 섬마다 한 말!”

“개종자 놈의 새끼들, 지들은 꿈적거리지도 않고 들어앉아 한 말씩이나 처먹는단 말인가?”

“도둑놈의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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