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인권 문제의 상징이 된 고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영결식이 오늘 진행된다. 김 할머니는 지난 30여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는 일반외교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기본 인권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세계가 인지하는데 기여했다.

김 할머니의 영결식은 오전 8시30분 서울광장을 출발, 청소년 및 대학생들이 할머니의 생전 메시지를 담은 만장을 들고 구(舊) 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영결식이 마무리되면 김 할머니는 충남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김 할머니는 지난 28일 오후 10시41분께 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할머니는 세계 곳곳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를 증언하고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한 국내 위안부 피해의 산 증인이었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만 15세였던 1940년 일본으로 끌려가 중국, 홍콩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당했다. 1947년 고향에 돌아온 뒤 1992년부터 성노예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국내 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우리나라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직접 목소리를 냈다. 2012년 3월8일에는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성폭력으로 고통 받는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 ‘나비기금’을 발족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5월 국경없는기자회와 프랑스 AFP 통신으로부터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됐다.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는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도 받았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영면하게 됐다. 그토록 고대하던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와 일본은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 출연으로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결론지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분노를 산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재단을 해체하고 사실상 당시의 합의를 무효화 하고 있지만 일본은 요지부동이다.

이에 김 할머니가 참여한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 10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지만 법원이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1차 변론기일을 다시 연기했다. 지난해 8월 항소장이 접수된 이후 잡힌 기일이 3차례 변경돼 아직 한 번도 변론기일이 열리지 않았다. 국가 소송을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과 할머니 측에서 각자 사정으로 한 차례 기일변경신청을 한 바 있다.

이 소송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지난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로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각각 1억원을 달라고 지난 2016년 8월 제기했다. 1심은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 2년 만에 원고 패소 판결했다. 2015년이나 현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다. 일본 정부는 10억엔으로 모두 보상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그 주장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인정한 셈이다.

김 할머니는 결국 일본정부의 사과를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남은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김 할머니의 기대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법적 책임여부와 10억엔의 성격이 불분명한 점 등 한일 정부가 애매모호하게 협약한 모든 내용을 바로잡아 위안부 피해자들의 평생 한이 해소될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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