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어유! 우리 같은 천한 것들한테 하늘인들 거저 뭘 주겠어유. 도가에서 종자 값하고 우리 식구들 먹을 양식까지 대준다고 했을 때 나는 대신 뭘 해야 하느냐고 물어봤어야 옳은 일이었어유. 그런데 내 속에도 도둑놈 심보가 들어앉아있어, 내가 한 일도 없는데 누가 뭘 준다고 하니 거저먹는 줄 알고 덥석 삼켰으니 누굴 원망하겠어유.”

“그래 어떻게 되었소이까?”

“처음 일 년까지는 문제가 없었지유.”

“그럼 일 년 뒤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첫해 삼포를 만들고, 씨를 뿌려 묘삼을 기르고 할 때까지는 청풍도가에서 모든 걸 대주며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유. 나도 다른 신경 쓸 일 없이 농사만 지으면 되니 이건 어깨에 진 무거운 지게를 내려놓고 빈 몸으로 다니는 기분이었어유. 우리 집이 저 위 선조 때부터 인삼 농사를 지어온 터라 나도 어려서부터 조부와 아부지가 해온 일을 알고 있어유. 농사도 농사지만 다른 잡다한 일들이 많아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어유. 그런데 그런 것을 청풍도가에서 다 해결해주니 얼마나 수월했겠어유. 청풍도가가 참으로 고맙기 그지 없었어유. 요새처럼 어려운 시절에 남 사정 봐줄 사람이 어디에 그리…….”

“그래, 일 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거요?”

언구의 사설이 길어지자 듣고 있던 사람이 말을 자르며 물었다.

“삼은 오륙년을 키워야 하는 농사 아니유? 그런데 일 년이 지나자 정월에 도가에서 나와 그간 빌려간 것을 갚으라는 거유. 그래서 내기 그랬지유. 삼을 키워 캐야 갚지 이제 막 묘삼을 심어놓고 뭘로 갚느냐고. 그랬더니 그건 니 사정이니 우리는 알 바 아니라는 거유. 그러더니 무조건 일 년 간 도가에서 갖다 쓴 것을 갚으라니 뭐가 있어야 갚지유. 결국 도가에서 원하는 대로 차용증을 써줬어유. 그런데 일 년 고리가 얼마인지 알어유? 십 할이유. 일 년을 갚지 못하면 원전에 배가 늘어나는 거유. 이 년을 갚지 못하면 네 배요. 한데 실상은 네 배가 아니유. 당장 갚을 길이 없는데 뭘루 갚겠어유. 그러다보니 원전에 이자, 또 원전에 이자, 그리고 갚지 못한 이자에 이자가 붙어 열 배가 불어나는 것은 순식간이었어유. 그렇게 오년 만에 삼을 캤지만 내 수중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유. 들어오기는커녕 빚만 잔뜩 지고 말았어유. 그래도 관아에서 할 때는 좋은 삼을 공납하고 나머지는 농사꾼에게 줬는데, 청풍도가가 관리를 한 이후에는 농사를 지어도 빚을 내세워 잔뿌리조차 채로 치다시피 싹쓸이해가니 인삼은 낯짝도 구경 못하고 있어유.”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소이까?”

“청풍도가 종살이를 하고 있어유!”

언구가 체념해서 말했다.

언구의 이야기처럼 청풍도가에 코를 꿰이면 벗어날 길이 없었다. 설사 금덩어리 농사를 짓는다면 몰라도 곡물이나 특산품을 지어서는 청풍도가의 이자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수확하는 곡물이나 오 년이나 되어야 수확하는 인삼 농사로는 장마철 강물 불어나듯 하는 이자를 갚는 것은 불가능했다. 농사를 지어 빚을 갚는 것보다 없는 손자 환갑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다. 대전리 인삼 농사꾼 언구는 이렇게 청풍도가에 코를 꿰여 옴짝달싹도 못하고 종살이를 하고 있었다. 청풍도가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힘없는 고을민들의 수족을 묶어놓고 자신들의 마음대로 사람들을 부려먹고 그들이 생산한 물산을 강탈하여 자신들만 잇속을 차렸다.

“지금 내가 도가 빚을 갚는 것은 꿈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어유. 내기 빚을 갚는 길은 내가 죽어도 끝나지 않을거유. 여러분들, 도가와는 어떤 거래도 하지 마유!”

언구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청풍도가를 경계하라고 소리쳤다.

“청풍도가 횡포를 당하지 않은 고을민이 어디 있겠소이까. 그걸 번연히 알면서도 오죽 살기 힘들면 빌어먹겠소이까. 죽는 것보다는 우선 사는 것이 다급하니 호랭이 아가리 속이라도 들어가는 것 아니겠소. 아닌 말로 지금 청풍고을에서 우리 같은 부랄 두 쪽만 가진 놈들에게 급전이라도 꿔줄 곳은 저기 청풍도가 밖에 더 있소?”

일방적으로 청풍도가를 성토하고 있는 가운데 어떤 사내가 언구의 말끝에 청풍도가를 두둔하고 나섰다.

“그 말도 맞소! 우리 같은 무지랭이들은 당장 죽는다 해도 눈 하나 깜짝도 않는 곳이 세상 인심이오!”

“그렇게 생각하니 청풍도가도 아주 나쁜 데는 아니네!”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