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어르신은 쇠똥이 벗겨져서 남의 물건을 강탈하는거유?”

“이놈아 내가 무슨 물건을 강탈했다는 것이냐?”

“남의 물건을 돈도 안 내고 그냥 달라니 그게 그거 아니고 뭐유!”

금만춘도 독이 올라 물러서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어린 놈 말에 일일이 답하기도 귀찮으니, 옹기쟁이 자네가 대답하게. 항아리를 모두 우리 도가로 옮기면 자네가 진 빚은 내가 떠안음세!”

“그건 또 무슨 말씀이유. 지가 진 빚을 왜 어르신께서 갚아 주신대유?”

도운은 김주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사람아,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는가. 가마에 쌓여있는 항아리를 몽땅 내게 넘기면 그 대신 자네가 진 빚을 내가 갚아주겠다는 말일세!”

“항아리를 몽땅 팔면 제 빚을 갚고도 두어 배는 남을텐데요.”

도운은 항아리가 아까웠다.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 항아리를 만드느라 들어간 공력도 그렇지만, 그 항아리를 팔아 그간 일한 사람들 품삯도 주고 남는 돈으로는 식구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가용이었기 때문이다.

“쌓아놓고 팔리지 않는 물건, 금덩어리면 뭘 하겠는가, 허채이 아니면 일색이지! 하나라도 빨리 팔아 남의 빚을 갚는 게 상수 아니겠는가? 요새 장 담그는 철이 되어 사방에서 지천으로 독이 들어오고 있다네. 그런데도 내가 빚을 대신 갚아주면서까지 항아리를 사주는 것은 자네와의 옛 정리를 생각해서라네!”

김주태의 말은 번지르르 했지만, 그것이 고양이 쥐 생각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었다.

“그것은 알지만, 그 항아리를 빚으로 몽땅 넘기고 나면 지들 식구들은 뭘 먹고 삽니까요?”

도운도 김주태의 속셈을 번연히 알고 있었지만, 고양이가 그놈이고 칼자루 잡은 놈이 그놈이라 부러 모르는 척 시침을 떼며 사정조로 물었다.

“자네 식구들은 내가 보살펴 줌세!”

“어떻게 지들 식구들을 보살펴준다는 말씀이요?”

“이제 자네들 식구들은 앞으로 다른 걱정일랑 접어두고 항아리만 만들어 주게나. 그리고 그 항아리를 우리 도가에 넘겨주기만 하면 되네. 그러면 자네가 일한 품삯은 내가 쳐서 주겠네!” 

김주태의 속셈은 거기에 있었다. 옹기쟁이 도운을 청풍도가의 머슴으로 부리겠다는 말이었다. 결국 도가에서는 도운의 기술과 가마를 이용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은 최저의 싼값으로 받고 이득은 최대로 높이려는 것이었다.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었다. 청풍도가 김주태는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보내 도운에게 접근했던 것이었다. 반값만 줘도 되는 물건을 팔 할을 주겠다고 미끼를 던져 덥석 물게 한 것도, 대량으로 항아리를 주문한 다음 사가지 않아 곤경에 빠뜨린 다음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값을 제시해 폭리를 취하는 것도 계획된 의도였다. 그것을 미리 눈치 채지 못하고 눈앞 이득에 눈이 어두워 일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에는 도운의 책임도 있었다. 욕심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자책하며 후회할 여유도 도운에게는 없었다. 자책이나 후회도 여력 있는 부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없는 놈들은 당장 살 길이 급급하니 그럴 겨를도 없었다. 종살이나 진배없는 횡포였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는 일이니 도운으로서도 수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힘없는 사람들 등꼴 빼먹는 날강도 놈들이오!”

양평 독장수 금만춘이가 치를 떨었다.

“나도 그렇게 속아 코를 꿰여 여적지 머슴처럼 일만 했다오.”

그때 인삼 농사꾼 언구가 금만춘의 말에 동조하며 사람들 앞으로 나섰다.

“이 양반은 대전리에서 대대로 인삼 농사를 짓는 언구라는 사람이오!”

김상만이 언구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청풍도가에서 삼도 관여를 한단 말이오?”

“겉으로는 관아에서 관리를 하지요!”

“오늘 이 자리는 청풍도가를 성토하려고 모인 자리가 아니오. 그런데 그 사람은 뭣 때문에 나왔단 말이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김상만의 소개가 끝나자 대전리 인삼 농사꾼 언구가 사람들 앞에서 오늘 청풍장에 나오게 된 연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 삼 농사꾼들은 청풍관아에서 특별히 관리를 받어유. 그런데 어찌해서 청풍도가에 빚을 지게 되었는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면 이래유. 애초는 우리 농가에서 삼포에 씨를 뿌리고 삼을 키워 생삼도 만들고 건삼도 만들고 가공삼도 만들어 관아에 공납을 했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관아에서 우리 삼포를 관리하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청풍도가에서 나오는 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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