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득 경상대 명예교수

교가도 가물가물한 동창회를 갔다. 고향을 지키며 테마관광 뗏목지기로 사는 인석씨, 한 밤 여자 동창들만 살짝 살짝 불러내 뗏목에 태웠다. 니들 줄라고 물방울 다이아를 준비했어. 온갖 물고기 화석과 그 옛날 죽은 물귀신들이 아직도 헤엄을 치고 안개로 풀어진다는 너스레도 좋지만, 장대로 이쪽저쪽 물밑을 짚으며 혼잣말하듯 이쯤인데, 이쯤인데 꺄우뚱, 수양버들 사이로 삐딱하게 내리는 달빛도 좋지만, 다이아가 좋아. 나는 눈매 선한 뗏목지기의 정선 아라리에 장단을 맞추었던 것인데.

바람이 속삭임을 바꿨다. 수직 절벽을 지나, 반짝반짝 빛나는 물의 광석을 노로 내리쳤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이아가 후두둑후두둑 쏟아졌다. 그 옛날 발가벗고 물에 뛰어들던 그 소리로 물이 깨졌다 물방울은 얼굴이며 옷으로 튀었다.

이건 경희 꺼, 저건 삼숙이 꺼, 저쪽은 영옥이 꺼, 저기 가운데 제일 큰 건 진순이 꺼. 집에 돌아온 다음 날 내 옷에선 그 옛날 깔깔거리던 웃음소리가 물방울 다이아처럼 달려 반짝반짝 빛났다.

- 신준수, ‘물방울 다이아’ 전문

 

신석기와 청동기로 접어들면서 치레걸이의 생산이 기술적으로 진보함에 따라 인간의 미적 욕구와 소유욕은 늘어나게 됐다. 그 가운데 물방울 다이아는 허영의 대명사가 됐다. 왜 그런가. 그것은 보석의 물신성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물성애는 성적 욕구였지만 마르크스의 물신성은 화폐의 교환가치와 소유욕을 의미한다. 보석에 대한 미적욕구는 인간의 본원적 소유 욕구를 강화시켰고 환금성이라는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 물방울 다이아가 외제 승용차의 소유를 가능하게 하고 강남 아파트를 매매할 수 있게 하고 신분 상승을 가져온다면 우주주식회사의 이사장이 아니라 세속적 하느님이 아닌가.

물방울 다이아 채석 광산은 강물이다. 제조자는 뗏목지기 인석씨이다. 환금성도 없고 소유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떤 세속적인 값나가는 물품을 매입할 수 없다. 보석에는 태곳적 벌레나 식물의 잔상이 들어있지 않다. 그런데 물방울 다이아에는 달이 들어있다. 월인(月印)이고 해인(海印)이기 때문이다. 물방울 다이아는 현실적인 소유권은 없지만 마음속에는 영원히 자리잡고 있다. 시적 자아의 옷에는 그 옛날 깔깔거리던 웃음소리가 달려 반짝반짝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만약에

집을 그린다면

그리는 만큼

소곤대는 집일 거야

지우개는 필요 없어

아주 조그맣게 소곤대는 집이니까

새를 그리면 하늘이 생기는 집

나무를 그리면 언덕이 생기는 집

담을 그리면 마당이 생기는 집

벽을 그리면 방이 생기는 집

손잡이를 맘대로 달 수 있는 집

방문을 조금만 열어 볼게

난 지금 네가 궁금한 연필이니까

네 방문이 잠겨 있다면

그 방 옆에 내 방을 그려 둘게

지금 네가 만약에 집을 그린다면

그리는 만큼 소곤대는 집일 거야

지우개는 필요 없어

아주 조그맣게 속삭이는 집이니까

- 송선미, ‘소곤소곤 집 그리기’ 전문

 

숲 속에는 외발 닭다리 위에 빙빙 돌아가는 외딴 집 한 채가 서 있다. 울타리는 해골이 걸린 사람의 뼈들이고 빗장은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이반 왕자가 주문을 걸자 한 손에는 절구공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지나온 흔적을 지우는 빗자루를 들고 하늘을 나는 절구를 탄 바바야가가 나타난다. “강남 아파트를 줄까, 녹지 단독주택을 줄까?” 어느 나라 장관이 그린 집은 평당 1억이라고 한다. 빈집은 늘어 가는데 녹지를 풀어 30만호를 지을 것이라고 한다. 한 채 외의 집에는 90%의 양도세를 거둔다고 하고 한 집에 그냥 산 사람에게도 보유세를 매긴다고 한다. 국가는 세금 대박이고 국민은 부채 쪽박이다. 참 좋은 나라이다.

시인이 그린 집에는 조상의 영혼이 내려와 텃밭을 가꾸고 신뢰가 넘치는 부부는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으로 세 자녀를 기른다. 지금 가족들은 내년 봄 금강산 관광 갈 계획을 소곤소곤 상의하고 있다. 시인이 연필로 그린 집이 정말 꼭 같다고 그린 집이 돌려겨누기로 확인하고 있다.

남한강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쓰며 사는 시인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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