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반년 가까이 지나자 도운의 가마에는 팔리지 않은 독만 잔뜩 쌓였다. 독만 쌓인 것이 아니었다. 일시에 대량의 독을 만들어내느라 일꾼들을 고용하고 주지 못한 품값에 흙 값에 나무 값에 가마를 늘리느라 들어간 돈이 빚으로 남아 꾸러미처럼 줄줄이 달려있었다. 그런 지경이니 집안 살림도 예전처럼 엉망이 되었다. 도무지 살아나갈 방도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옹기장이 도운은 금만춘과 함께 청풍도가로 찾아갔다.

“어떻게 오셨는가?”

번연히 알면서도 청풍도가를 지키고 있던 사내는 두 사람을 힐끗 보더니 처음 보는 것처럼 물었다. 처음부터 도운의 가마를 드나들며 항아리를 팔아주겠다던 그 놈이었다.

“우리 항아리 좀 어떻게 처분할 수 있을까 해서…….”

도운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주저거렸다.

“그건 이미 다 끝난 일 아니신가?”

뺀질바우처럼 생긴 사내가 나이도 많은 도운에게 반말 짓거리를 하며 느물거렸다.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 좀 해주시오.”

워낙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라 도운은 그런 생각은 할 겨를도 없었다. 도운이 사정을 했다.

“항아리 만드는데 얼마나 들어간다고 팔 할에 넘기라 할 때 넘기지 뭘 더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더니 이제와 딴 소리요?”

적반하장 격이었다. 제 놈들은 손 하나 대지 않고 남의 물건을 받아다가 팔 할이나 해쳐먹으면서 손발이 터지도록 일을 해서 물건을 만드는 가마 주인 도운에게 외려 욕심을 부린다고 하니 지나가던 개도 코웃음 칠 일이었다.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고도 모르는 척 부러 그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청풍도가 사내놈은 제 똥 구린지는 모르고 말했다.

“그 금에라도 넘길 테니 주선 좀 부탁하외다!”

워낙에 사정이 다급한지라 도운은 처음 청풍도가에서 요구했던 값에 항아리를 넘기겠다고 했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니 난 모르오!”

“그럼 누가 한단 말이오?”

“물건 값을 정하는 것은 우리 주인님 소관이오!”

“당장 나를 좀 만나게 해주시오!”

“지금은 출타 중이라 당장은 어렵소. 그러니 갔다가 다음에 오시오.”

옹기장이 도운은 애가 달아 매달렸지만 사내는 남의 다리 긁듯 느긋하게 말했다.

그날 도운은 종일을 기다린 끝에 청풍도가 우두머리인 김주태를 만날 수 있었다. 젊은 금만춘은 속에서 천불이 나는지 그만 가자고 복 조르듯 했지만 도운은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처분만 바라고 있는 식구들과 일꾼들의 간절한 눈빛이 떠올라서였다.

“그래, 팔 할에 넘기겠다고?”

김주태가 야짓잖을 정도로 도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요!”

“종당엔 그리 할 것을 왜 그리 고집을 피웠는가?”

“송구합니다요.”

옹기장이 도운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머리부터 조아렸다. 그것은 뭇 백성들이 살아온 방식이었다. 태생이 양반이 아니고, 손에 쥔 것이라고는 없는 빈한한 것들은 옳고 그름을 따질 처지도 아니었다. 그저 수그리고 비는 것만이 그들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어찌하는가? 이젠 팔 할에도 자네 독을 살 수 없네!”

“예?”

도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김주태의 말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팔 할에 살 생각이었지만, 이젠 그렇게는 못하네!”

“팔 할에도 못 산다면 도대체 얼마에 사실 요량이신지요?”

하도 기가 막혀 옹기장이 도운이 김주태에게 물었다.

“일단 무조건 항아리를 전량 우리 도가로 넘기게!”

“무조건이라면 우리 가마에 쌓여있는 항아리를 그냥 청풍도가로 옮기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네!”

김주태는 시렁치도 않은 말투였다.

“열불 터져 못 보겄네! 남의 물건을 그냥 넘기라니 도둑놈 심보도 그보단 낫겠슈!”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금만춘이 속이 터지는지 김주태에게 도둑놈을 운운했다.

“대가리에 쇠똥도 안 벗꺼진 놈이 웬 참견이냐!”

김주태가 발끈 성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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