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깊은 겨울도 어느 정도 지난 어느 날, 아내와 시골 밭으로 갔다. 봄이 오기 전 밭에 여기저기 흩어져 뒹구는 들깨 대궁을 태워버려야 한다. 아직도 춥다. 다행히 바람이 자고 있어 소각하기 좋은날이다.

요즘 뉴스에서 날마다 산불이 나서 불을 끄느라 난리라고 보도한다. 어느 정도 진화됐다가도 강풍으로 되살아나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대게는 밭둑을 태우다 산으로 붙어버렸다고 한다.

밭에 도착했다. 따스한 햇살이 반겨준다. 무더위와 싸우며 풀 뽑아주며 키운 들깨였다. 냄새가 상쾌하게 다가온다. 때마침 ‘산불조심’ 완장을 찬 산불 감시원의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바람이 없고 들깨대궁을 바짝 말라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흩어져 있는 들깨대를 끌어 모았다. 양이 얼마 되지 않겠다고 했는데 예상보다 많았다. 수북이 쌓인 들깨대를 보며 작년에 많은 양의 들깨를 생산 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에 불을 붙여 모아놓은 무더기에 불을 붙였다. ‘확’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솟아올랐다. “따따따따‘ 큰 소리를 내며 높이 솟구쳐 올랐다. 이리저리 불똥이 날아 다녔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얼른 꺼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불을 지켜보며 별일 없기만을 기도했다. 기다리고 있자니 몸이 달았다.

밭이 산과 인접해 있어 더욱 위험에 빠졌다. 얼마를 대책 없이 지켜보고 있는데 다행히 불이 조금씩 자지러들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그런데 그때 등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느새 불씨가 날아가 뒤쪽 풀 섶에 불이 붙어 타고 있는 것이다. 마치 폭죽놀이 하듯 여기저기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황급히 아내와 나는 솔가지를 꺾어서 불을 끄기 시작했다. 한번 때릴 때마다 때린 자리의 불은 꺼지지만 다른 불씨가 옆으로 튀어나가 또 번진다. 겁이 덜컥 났다. 도망갈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다. 이러다 우리가 불에 둘러싸여 화상을 입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겨우 진화하는데 성공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서로 마주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옷과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마음이 안정되자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검댕이가 돼버린 얼굴엔 땀이 흘러내려 계곡이 되었다. 그 땀이 옷으로 떨어져 바둑무늬가 되어 있었다.

왜 산불이 발생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괜찮겠지 하는 작은 방심이 엄청난 재난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대수롭게 생각했던 일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큰일도 작은 불씨로부터 시작된다. 무섭다. 두려움에 떨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 앉고 마지막 잔불까지 확인하고 차에 올랐다. 다리가 후들거려 출발하지 못하고 한참을 차안에 앉아 멍하니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불 감시원의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도로변에 ‘작은 불씨 하나가 금수강산 다 태운다’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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