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운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청풍도가와 계약을 했다. 그리고 한동안 청풍도가는 도운에게 약속한 대로 모든 일을 지켰다. 가져간 항아리 값도 정한 날짜에 팔 할을 쳐서 또박또박 지불했다. 금만춘이 청풍장을 다니며 팔던 때보다 몇 곱절의 항아리들이 줄줄이 팔려나갔다. 팔려나가는 만큼 돈도 차곡차곡 쌓였다. 흙을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만드는 것 같았다. 이렇게만 장사가 지속된다면 부자 소리를 듣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땅도 사들이고 머슴도 두고 떵떵거리며 앉아서 놀고먹어도 될 성 싶었다. 미처 만들어놓은 항아리가 없어 몇 날 밤을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자신에게 닥친 행운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항아리 수효가 늘어나자 도운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사람도 두고 가마도 늘렸다. 그래도 일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도공, 앞으로 양평 가마에서 나오는 항아리는 몽땅 우리 도가에서만 팔 수 있도록 해줘야겠소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청풍도가에서 자신들에게 전매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럼 만춘이는 어쩝니까요?”   

도운이는 이제껏 고락을 같이해온 금만춘이 마음에 걸렸다.

“금만춘에게도 독을 주면 안 되고, 여기 가마에서도 도공이 사사로이 독을 팔면 절대 안 되오!”

사내는 단호하게 도운네 양평 가마의 전매권을 청풍도가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요구보다도 협박에 가까웠다.

“그래도 여적지 나와 함께 일을 해왔는데 만춘이에게까지 항아리를 못 팔게 할 수는 없소이다!”

도운은 이제껏 자기 독을 팔아주며 도와준 은인인데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사내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렇다면 우리 도가와 금만춘 중 한 곳만 선택을 하시오! 금만춘이요? 도가요?”

청풍도가에서 온 사내가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자 갑자기 도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운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버릴 수가 없었다. 금만춘은 사람 도리를 지키기 위해서 버릴 수가 없었고, 청풍도가는 돈이 아까워 버릴 수가 없었다. 평생을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고 흙투성이가 되어 살아오다 이제 뭔가 운대가 맞아 좀 살만해졌는데 그것을 놓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소금을 먹지 않았다면 물을 킬 일도 없었다. 독을 팔아 식구들 밥이나 끓여먹으면 족하다고 생각했던 예전이었다면 고민이 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항아리를 팔아 돈 맛을 알아버린 도운은 청풍도가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다. 식구들 얼굴도 떠올랐다. 이제껏 고생만 하다 겨우 얼굴이 환하게 펴진 마누라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청풍도가를 버린다면 다시 땟국 구죽죽한 예전의 모습으로 전락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도운은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도운은 도리보다는 실리를 택했다.

“만춘아 미안하구나. 나잇살이나 먹어 어른 노릇도 못하는구나!”  

“나는 독을 팔지 않아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으니 아재는 너무 마음 쓰지 마시요! 젊은 놈이 뭘 하면 굶겠소? 그러니 내 걱정일랑 말고 아재나 도가와 잘 하시요!”

도운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금만춘이 오히려 도운을 위로했다.

청풍도가에 모든 독을 넘겨주기로 전매권을 넘긴 이후 양평 도운의 가마는 더욱 바빠졌다. 청풍도가에서 주문하는 물량이 갑자기 폭주했다. 청풍도가에서는 항아리뿐만 아니라 살림에 필요한 온갖 옹기그릇들도 함께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도운과 그 가족들의 손만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감당할 수 없었다. 도운은 물량을 맞추기 위해 또 가마를 짓고 항아리를 만드는 기술자를 고용하고 잡일을 돕는 거추꾼도 늘였다. 도운과 가족들이 들러붙어 가내수공업으로 밥이나 먹고 살던 도운의 양평 가마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예전에 비해 가마 규모도 몰라보게 커졌다. 물레가 하루 종일 돌며 쉴 새 없이 독을 만들어내고, 가마는 항아리와 옹기를 구워내느라 밤을 새며 몇 날이고 불을 지폈다. 가마 안팎에서는 잡일하는 거추꾼들이 항아리를 만들 흙을 퍼나르고 그릇을 구울 나무를 해 나르느라 종일 분주하게 오갔다. 굴왕산 같이 침침하고 옹색했던 도훈의 양평 가마가 청풍도가와 손을 잡은 이후 번듯하게 바뀌었다. 두더쥐처럼 꼬지지하던 식구들도 때깔을 벗고 환해졌다. 이 모든 것이 청풍도가 덕분이었다. 도운도 그것이 고마워 청풍도가에서 원하는 일이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해주기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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