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호 영동교육장

윤 교장은 늘 그렇듯 단출한 저녁 밥상을 물렸다. 마침 거실 TV에서 지역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도내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입학생 수가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생겼습니다.”

혀끝으로 다가오는 커피 맛이 쓰다. 덩달아 윤 교장의 속도 편치 않다. 입학생이 한 명도 없다는 학교가 바로 윤 교장네 학교이기 때문이다.

매년 연말이면 면사무소에서 신입생 명단이 넘어온다. 그런데 올해는 입학생이 한 명도 없다. 혹시나 해서 교감선생님이 면사무소에 전화로 확인까지 했다. 하지만 인구 천 명이 넘고, 가구 수가 오백이 넘는 면 전체에 입학할 아이가 한 명도 없다는 통보다.

정년을 코앞에 둔 윤 교장은 이 학교 출신이다. 어디 그 뿐이랴. 삼십 년 전, 교사 시절에도 모교인 이곳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그때만 해도 열두 학급에 학생 수가 사백명이 훌쩍 넘었다. 삼봉 냇가로 봄 소풍 갈 때면 도시락가방을 맨 학생들이 까마득하게 신작로를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오는 학부모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을에 운동회를 하면 구경나온 동네 사람들과 학부모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도대체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때를 생각하면 문득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의 마술에라도 걸린 느낌이다.

출근해서 교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도 온통 그 얘기다. 입학생이 없으면 삼월에 당장 한 학급이 줄게 된다. 그러면 승진을 앞두고 있는 최고참인 정 선생이 다른 학교로 이동을 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정 선생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이곳이 산골 오지학교로 승진 가산점이 있는 군내 유일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어디 숨겨둔 자식이라도 데려와야 하는 것 아녀?”

직원들이 농담조로 한마디씩 던진다.

“그러게요. 신입생 데려오는 분에게 후사하겠습니다.”

정 선생도 맥없이 대꾸한다. 하지만 아이 한 명 키우는데 온 마을이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더욱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질 일이 아니기에 못내 답답할 뿐이다. 인구 감소와 출산율 저하로 생긴 현상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헛헛하게 며칠이 지나갔다. 정 선생과 직원들이 나름으로 신입생 유치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생각지도 않던 일이 일어났다. 신입생 예비소집이 끝나고,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교장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정 선생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교장선생님, 일학년 신입생이 한 명 올 것 같아요.”

윤 교장이 혹 잘못 들었나 싶어 재차 묻는다.

“뭐라고요? 입학생이 생겼다고요?”

정 선생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랬다. 어제 교무실로 귀촌에 관심이 있는 부부가 찾아왔단다. 자녀가 셋인데, 큰 애가 일곱 살, 둘째가 다섯 살, 막내가 두 살이란다. 눈여겨 둔 포도밭을 구입해 농사를 지어보려고 하는데, 당장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더란다. 그래서 학교에 있는 빈 사택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하더란다.

학교에는 낡긴 했어도 빈 사택이 두 곳이나 있었다. 조금만 손보면 사는데 큰 지장은 없는 상황 아니던가. 입학생이 오기만 한다면 사택 빌려주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랴.

윤 교장은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해본다. 그리고 속으로 피식 웃으며 주문을 외운다.

“까치야, 울어라.”

까치소리 나는 걸 보니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봐요. 모처럼 늦잠 든 윤 교장을 깨우며 아침에 아내가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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