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멀리 호수가 파랗게 보인다. 땀이 흐른다. 문득 등줄기에 소름이 끼친다. 혼자서 등산할 때는 느끼지 못한 서늘함을 산성 답사할 때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아마도 가슴 속에 산성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희생된 아까운 목숨들과 영적 접촉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죽음’이란 참으로 외로운 사건이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목숨이고 그것을 맞는 순간만은 참으로 고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산성을 지키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거나 축성 현장에 끌려나와 굶주려 죽을 때는 그리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얼마나 억울하고 한이 맺혔을까. 때로 나도 산성을 다니다 언젠가 성 돌을 베고 스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지금은 호수가 되고 푸른 물에 묻혀버린 이 고을이 건너편에 있는 백골산성의 처참한 역사를 상기시킨다. 뒷날 위덕왕이 된 부여창은 성왕의 태자였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사를 일으켜 관산성을 공격했다. 그것이 유명한 관산성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하고 태자 부여창은 여기서 바라보이는 대전시 동구 신하동의 백골산성까지 쫓겨서 2만9천6백 명의 군사를 잃고 홀몸으로 사비로 도망가서 부왕의 뒤를 이어 위덕왕이 되었다. 그러나 왕권은 더 추락하고 조정은 신하들의 손에 들어 백제의 운명은 더욱 흔들렸다. 신라와 삼한일통의 경쟁은 여기서 기울어지지 시작한 것이니 백제 역사 쪽에서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산성 아래 고급 음식점이 있고, 회덕 황씨 재실인 미륵원지가 있고, 은진 송씨네 관동묘려가 있다. 그리고 멀리 백골산성 아래 일명 꽃님이 반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꽃님이 반도는 이 고을에 물이 괴어 호수가 생기면서 이뤄진 반도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카페가 있다. 카페에서 바라보면 마산동산성은 대청호의 경관을 조망하는 전망대가 되고, 여기서 바라보면 꽃님이 반도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골산성에서 내려다보면 마산동산성, 미륵원지, 관동묘려와 함께 회인쪽 물과 문의쪽 물의 갈림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산동산성을 비롯한 백골산성, 노고산성, 성치산성 부근에서 수많은 민중이 피를 흘렸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오늘날 빼어난 경관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월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산동산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산불이 난 곳에서 새끼손가락만큼 굵은 고사리 몇 개를 꺾었다. 고사리가 왜 이리 튼실한가. 아랫도리가 통통하다. 산성을 쌓고 그 산성을 지키던 군사들도 이곳에서 고사리를 꺾었을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한가지니까 말이다. 바람이 시원하다.

주차한 곳까지 내려오니 산불 감시하는 분이 아직도 그 자리에서 산을 지키고 있었다. 이 부근에 산나물이 많아서 나물 뜯는 이들을 관리한다고 한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모두 불씨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그분의 눈에는 불씨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 분이 고마웠다.

돌아오는 길은 노고산성이 있는 찬샘정 부근으로 돌아서 찬샘마을로 알려진 핏골을 거쳤다. 지금은 농촌 체험마을이 돼 있지만 예전에는 개머리산성에서 동으로 노고산성, 성치산성에 둘러싸인 전쟁터이다. 그래도 지금은 피가 내를 이뤘다는 핏골이란 이름보다 훨씬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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