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해나 농사를 지었는데 살림이 불어나기는커녕 식구들 배만 곯리고, 남은 것 빚더미 뿐이래유. 농사를 짓다 내리 굴러 죽더라도 고향에 가 맘 편하게 내 땅 부치며 살고 싶드래유.”

종득이가 타관살이가 너무 고달프다며 고향인 쌍룡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당장 떠나면 되지 뭔 미련이 남았다고 못 떠나는 거유?”

“야, 이놈아! 떠나는 건 지 마음대로 떠나냐?”

“왜 못 떠나?”

“이 답답한 인사야 빚진 놈들이 도망치게 땅주인이 눈감고 있다냐?”

같은 동네에서 왔는지, 종득이 이야기를 듣던 두 사람이 서로 악다구니를 했다.

“그 땅주인이 누군줄 아슈. 바로 저기 청풍도가드래유!”

 종득이가 청풍도가를 가리켰다.

“쳐죽일놈덜!”

“저누무 도가에 똥을 퍼부어버려!”

“똥 같고 되겠어? 불을 확 까질러야지!”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청풍도가를 징치하자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청풍도가에서는 땅만 가지고 지랄을 떠는 게 아니래유! 지는 양평에 사는 항아리 장사인데, 금만춘이라 합니다유. 며칠 전 임방에 들렸다 상만이 아재비한테 얘기를 듣고 오늘 여기에 나오게 됐어유.”

금만춘은 스무 살이나 갓 넘겼을까 말까 하는 아주 앳되 보이는 더벅머리 총각이었다. 

“만춘아 함께 왔느냐?”

“예, 아재 같이 왔구먼유. 청풍도가에서 땅 말고도 얼마나 못된 짓을 하고 있는지 그 증인을 데리고 왔구먼유!”

금만춘이 양평 임방주 김상만의 물음에 답하며 동시에 운집해있는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늙은이를 사람들 앞에 내세웠다.

“나는 독쟁이 도운이올시다. 양평 질구지에서 항아리를 만들고 있소이다. 이 날까지 독을 만들며 배불리 먹고 살지는 못했어도 여적지까지 그럭저럭 살아온 것은 모든 게 항아리와 내 물건을 팔아준 사람들 덕택이었다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탄탄하고 값싸게 물건을 만드는 게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는 길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오. 그렇게 평생을 흙하고 씨름을 하며 항아리를 만들어왔지만 요새처럼 힘들고 억울한 적이 없었소이다. 왜 그런고 하니 형편이 좋지 않아 독이 팔리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으니 억울하지나 않지요. 전보다도 항아리는 훨씬 더 많은 만들어내느라 바쁘기는 똥 싸게 더 바쁜데 항아리 값은 몇 배로 뛰어 사람들에게 욕을 배터지게 먹고 있소이다.”

“물건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만들어지는데 왜 값이 뛴단 말이요?”

“그러니까 하는 말 아니겠소?”

“그 무슨 남에 다리 긁는 소리요? 물건도 많이 만들고 값이 뛰었다면 독쟁이 양반이 독식을 하니까 그런 것 아니오?”

“뭘 많이 먹기나 하고 항아리 값 올랐다고 욕을 먹는다면 억울하지나 않겠소이다. 죽어라 항아리를 만들어 가마에서 나가는 독은 더 많아졌는데도 내 수중으로 들어오는 돈은 예전 절반도 되지 않는다오. 이게 무슨 해괴한 장단이냐 하면 저기 청풍도가라는 귀신이 도삽을 떨기 때문이라요!”

독쟁이 도운이 청풍도가를 노려보며 말했다.

독쟁이 도운이 이야기의 요지는 이러했다. 도운은 독을 짓고, 지은 독은 금만춘이 청풍과 인근 마을로 지고 다니며 팔았다. 독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느 민가에서 살림하는데 필요한 갖은 그릇들을 만들다보니 농사 짓는 것보다 뱃속도 편하고 수입도 좋았다. 아무리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해 끓여먹을 게 없는 집이라 해도 그릇은 있어야 했다. 독 짓는 도운이나 독 파는 금만춘이나 농사를 짓지 않고 독만 짓고 팔아도 먹고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추수 때가 되면 명년에 혹시라도 도지를 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지주 앞에 코를 박고 비굴하게 굽실거릴 필요도 없었고, 농사를 지으면서도 사사건건 잔소리를 퍼부어대며 얄얄이를 떠는 지주 낯짝을 보지 않아도 되니 이만한 일이 없었다. 그렇게 독 장사를 잘 꾸려나가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긴 것은 도운의 욕심도 한 몫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청풍도가의 술수에 말려든 것이었다.

어느 날 도운이의 가마로 청풍도가에서 어떤 사람을 보내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도운이 청풍도가에서 제시하는 사탕발림을 뿌리쳤어야 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솔깃한 이야기를 듣고 도운이도 욕심이 생겼다. 청풍도가에서 독쟁이 도운에게 던진 미끼는 뿌리치기 힘든 호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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