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득 경상대 명예교수

 

끼 셋을 기르느라

비 오는 이른 아침부터 직박구리들

먹이를 물어 나른다

새끼들은 어미만큼 자랐으나

아직 나는 게 서툴러서

어수룩한 떠꺼머리들

주둥이 놀놀한 막걸리 주전자,

웅덩이에 떨어지며 터지는 물방울처럼

젖내 나는 부리를 연신 댁댁거리며

삐이요, 삐이요, 삐, 삣, 히이요, 히이요

어미들을 부른다

어디서 잡아오는지 잠자리며 벌레들, 

씨 꼬투리까지 물어 오는데

어미들의 머리가 까슬하다

지치지도 않고 먹이 달라고 보채는

새끼들 부리에 하나씩 집어넣어준다

한숨도 쉬지 않고 오는 비 다 맞아가며

먹이를 물어 나르는 일만

몸에 배인, 요령이 없다

고작 할 수 있는 건 나뭇가지에

고단한 부리를 닦는 일뿐이다

새끼들 몸집이 불고

짱짱한 바람을 이길 수 있는 깃털을

가질 때까지

수고롭고 짐진 어미새들은

처처전진(處處全眞)한 하늘을 던져줄

뿐일까

단순하고 지극한 탁발이다

사람의 삶과는 달라 저 너머의 삶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다

자식들 아픈 데 없이 잘 살기만 바랄

뿐이라며

묵은 잎과 새들마저 날려 보낸

나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바리때 그 자체인 것이다

 - 이종수, ‘탁발’ 전문

 

시에서는 직박구리가 자연에서 재료를 얻어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어미 직박구리는 자연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탁발을 한다. 같은 제목의 다른 시에서는 바리때처럼 생긴 물봉선이 긴 꼬투리 끝에 꿀을 감춰두고 벌을 받아들이는데 벌들은 꽃수술을 지나 꽃값을 치르고 꿀 한 입 탁발해간다. ‘집’에서는 까치가 가지치기한 나뭇가지를 대들보나 석가래 감으로 재 보고 물어다 텔레콤 중계기에 지어 놓은 집을 고친다.

동식물의 활동과 인간의 노동을 똑같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감각적이고 자연적인 총체적 활동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같다. 그것은 일종의 먹이를 찾는 생명활동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인간의 노동은 자아실현의 실존적이고 자유로운 의식적 활동이며 미의 법칙에 따라서 생산한다는 점에서 동식물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종수의 시는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 도덕적 명제나 인간 행동의 원칙을 예시하는 짧은 이야기와 같은 우화시이며 아포리즘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아포리즘이란 우화시를 통해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유적 본질의 실천이라는 총체적 활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만만한 거 하나도 없다’에서는 목덜미에 붙은 눈곱만한 벌레를 털어냈더니 주둥인지 집겐지 댁댁거리며 방어 자세를 취하다가 돌아서 위협하기까지 하며 맞선다. 눈곱만한 벌레는 오히려 인간보다 유적 본질을 총체적으로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