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 얻어 농사 짓으면서 그만한 억울함은 누구든 겪는 거 아니오?”

운집한 사람들 틈에서 웬 사람이 종득이의 억울함은 이빨도 나지 않았단 투로 따져 물었다.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드래유! 남에 땅 부쳐 입에 풀칠하는 처지에 그 정도 거슬리는 정도야 나도 얼마든 참을 수 있드래유.”

“그럼 뭐가 억울하다는 거유?”

“추수가 끝나자 득달같이 와서는 소출의 칠 할을 내놓으라는 거래유. 그러더니 전세도 나보고 내래유. 그래서 병작제인데 절반씩 갈라야지 무슨 말이냐, 그리고 주인이 종자 값이며 전세는 내게 돼있는 대, 종자도 내가 사서 심었는데 종자 값을 쳐주기는커녕 전세까지 나보고 내라하고, 소출의 칠 할을 달라니 뭐가 잘못 된 게 아니냐고 물었드래유. 그랬더니 하는 말이 뭔지 알어유. 전혀 잘못된 것이 없대유. 왜 그런고 하니 지난 번 가뭄에 산 아래 소작인들은 갱분에서 물을 달어다 농사를 짓느라 여름내 죽을 똥을 쌌다는 거요. 그런 사람들도 반씩 소작료를 내는데, 나도 똑같이 내면 그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느냐는 거래유.”

“그런 당신은 지난여름 가뭄에 물도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지었단 말이유?”

몇 년 전 청풍 인근 뿐 아니라 남한강 연안을 따라 모든 농민들이 가뭄에 시달렸다. 그 해는 겨울에 눈조차 내리지 않아 봄부터 가뭄이 타더니 장마철이 되어도 마른번개만 치며 비는 병아리 오줌만큼도 내리지 않았었다. 전답에서 먼지가 날릴 지경이니 가을보리도 다 말라죽고 봄에 뿌린 씨앗은 싹도 틔우지 못했다. 그래도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빈 땅으로 놀릴 수 없어 뭐라도 심어 먹으려고 집안에 걷는 것이라면 모두들 나와 마을 앞 개울물을 퍼다 전답에 뿌렸다. 그런데 쌍룡 사람 종득이는 물 달어 올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니 이상해서 묻는 말이었다.

“남들처럼 강에서 물을 달어 올리지 않았을 뿐, 나도 물이야 펐지유. 우리 논은 산골짜기에 있는 잘갑논이래유.”

“아하, 그래서 가뭄을 덜 탔구먼!”

종득이의 말에 꼬치꼬치 따지던 사람이 그제야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잘갑논은 일 년 내내 질퍽거리는 논을 지칭하는 이 동네 말이었다. 이런 잘갑논은 물이 흐르는 산골짜기에 있거나, 논에 물이 솟는 웅덩이가 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가뭄에도 마르는 일이 없었다. 종득이가 도지를 물고 빌린 논은 산골짜기에 있는 잘갑논이라 농사를 지으려면 사람 품을 몇 배는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런 잘갑논이 들판에 있다면 상답 중 상답으로 쳐서 값도 몇 배나 비쌌다. 그런 논은 사람들 힘도 훨씬 덜 들고 소출도 많아 지주들이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는 소작인들은 도지를 얻을 수도 없었다. 종득이가 그런 잘갑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처럼 고향 쌍룡 비탈에서 농사 짓던 것에 비 한쪽 눈을 감고도 할 수 있겠단 생각에서였다. 이름만 잘갑논일 뿐 논둑길도 없는 산골짜기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사람 등골을 빼는 일이었다. 그러니 어지간하게 급한 사람이 아니면 마을에서는 그런 땅을 부치려고 선뜻 나서지 않았다. 종득이는 타관에서 온 사람이라 이 동네 사정에 밝지 못하고 어떻게라도 해서 정착해야겠기에 산골짜기 잘갑논을 부쳤던 것이었다. 그런데 땅주인이 사줘야 할 종자도 자신이 사서 심었는데, 추수를 끝내자 전세까지 물리고, 잘갑논이라 물 달아 올리는 일도 하지 않아 편하지 않았냐며 소출의 칠 할을 내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명년 농사가 걱정되어 드러내놓고 화도 낼 수 없었다.

“들판에 농사지은 소작인들처럼 물을 퍼올리지 않았다고 그들과 공평하게 해야 한다며 도지를 칠 할이나 내라고 한다면 여러분덜 심정은 어떨 것 같드래유.”

종득이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일 년 내 죽어라 일을 해서 소출에 칠 할을 내고, 종자 값에 전세까지 내고나면 남는 게 뭐가 있어! 지주놈들 생각에는 소작인들은 물만 먹고도 사는 줄 아나벼!”  

“여기 사람들은 부치려고 하지도 않는 고랑탱이 땅을 사정도 모르는 타관사람에게 주앵기고 종당엔 덩택이까지 씌워. 그러고도 천벌이 내리지 않는다면 하늘 있다는 말도 공중 하는 말이여!”

“도지를 공평하게 하기위해서라는 말도 간 빨리는 말이고, 몽땅 지놈들 뱃때지 채우려고 하는 짓거리구먼!”

청풍도가 앞에 운집해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분노의 소리가 점차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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