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도가에서 냉큼 빌려주던가?”

“두 말도 물어보지 않고 꿔주더이다. 외려 부모님 잔칫상을 차리려고 빚까지 내가는 효자가 어디 있느냐며 칭찬까지 하더이다. 그리고 여력이 생기면 천천히 갚아도 된다며 고마운 말까지 얹어주더이다.”

“그놈들이 그럴 리가?”

“그놈들이 그럴 때는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었겠지!”

궁달이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마디씩들 했다.

“청풍도가에서 쌀 반 섬을 내다 동네잔치를 하고 아부지도 기가 살아 더는 보채지 않았구먼요. 내가 깜짝 놀란 것은 반년이 지나서였우다. 배를 곯아도 남 빚지는 것이 싫어 맹물로 배를 채우더라도 여적지 남의 빚은 안지고 살았는데, 처음으로 남의 빚을 지고 보니 등허리에 검불 들어간맹키루 근질거려 영 맘이 편하지를 않았슈. 그래서 집식구와 어린 애들까지 모두 나서 죽을 뚱 살 뚱 일을 해 빚낸 쌀 원금 반 섬과 이자 두 말을 마련해 날 듯 도가로 달려갔지 않겠우?”

“그래 빚은 잘 갚았는가?”

“빚을 더 얹어왔우다!”

“그게 무슨 소리요?”

“왜 일곱 말만 가져왔느냐는 거요. 그래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원전과 이자만 가져오면 어쩌냐는 거요. 그동안 갚지 않은 이자에 이자는 떼먹을 작정이냐는 거우다. 그래 얼마를 갚아야되느냐 물었더니 한 섬 두 말이라는 거우다. 반 년 사이에 이자가 원전보다도 더 많이 불어나 있었던 거우다. 쌀 일곱 말을 갚고도 첨에 빌린 원금인 쌀 반 섬은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지유. 그 반 섬이 반 년 만에 두 섬이 더 늘어 두 섬 반이 된 것이라우!”

“새끼가 새끼를 쳤구먼!”

“쳐죽일 놈의 새끼들!” 

광의리 강아동에서 왔다는 궁달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욕지거리를 해댔다.

“여러분덜! 복장 터지는 내 얘기 좀 한 번 들어보슈!”

궁달이가 이야기를 마치자 또 다른 사람이 일어서며 청풍도가로부터 당한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뒷들에서 온 중복이오!”

“어디 뒷들에서 온 중복이오?”

어디를 가나 흔한 마을 이름이 앞들, 뒷들이었다. 마을 앞에 있으면 앞들, 마을 뒤나 산 뒤에 있으면 뒷들이었다. 청풍 인근만 해도 뒷들이 숫했다. 

“중복이는 우리 마을 사람이오!”

쌀 섬 위에서 김상만 양평 임방주가 중복이 대신 대답했다.

“말복이는 어디 가고 중복이라오?”

“말복이는 저 사람 동생이라오!”

“그럼, 저 사람 성님은 초복이오?”

사람들이 중복이 이름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다.

“그렇다우!”

김상만이 사람들 농을 받아넘겼다. 그러자 사람들이 와르르 웃어댔다.

“나는 뒷들에서 농사를 짓고 있슈! 그런데 보리를 팔고 쌀을 빚진 사람이오!”

“보리를 팔았는데 쌀 빚을 졌다니, 그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요?”

“자초지종 내 얘기를 한 번 들어보슈. 수 년 전 벼를 거둔 논에 가을보리를 뿌렸다오. 그런데 봄이 되었지만 일러 아직 대궁도 나오지 않았는데 청풍도가에서 나와 선돈을 줄 테니 우리 보리를 팔라는 거유. 봄이라 양식도 떨어지고, 처처에 돈 쓸 일이 내달아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뒤도 안 돌아보고 입도선매를 했지 뭐유.”

중복이가 이야기하는 입도선매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거래였다. 이제까지의 거래는 현물로만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곡물 같은 경우 쌀이나 보리나 콩이나 그 외 다른 곡물이나 추수하여 거둬들인 알곡을 팔고 사는 게 상례였다. 그런데 입도선매는 채 여물기도 전에 전답에서 자라고 있는 벼나 보리를 미리 파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보통 급전이 필요한 가난한 농민들이 입도선매를 했다. 그러다보니 헐값으로 넘기기가 일쑤였다.

“더구나 보리를 파는데, 질은 좋지 않지만 하미 값을 쳐준다고 하니 횡재도 이만저만한 횡재가 아니잖슈. 우리 같은 박복한 팔자에 무슨 횡재가 있겠슈. 횡재가 악재라는 걸 그때 그걸 알았어야 하는데, 눈앞 횡재에 눈이 멀어 그게 독인지도 모르고 꿀꺽 삼켰지  뭐유.”

“보리든 쌀이든 팔고 받았으면 끝난 일이지, 뭐가 문제란 말이오?”

“그게 그렇지 않았으니 하는 말 아니겠슈? 보리 수확 때가 되었는데 청풍도가에서 찾아와 쌀을 도로 내놓으라는 거요,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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