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입학 초기 시절, 나는 친구들에게 그저 듬직한 아이였다. 딱히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말수도 적었다. 나는 교실 안에서 조용히 내 할 일만 하고 마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다. 그러나 내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나서기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였다. 그런 내가 소극적이 됐던 것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왕따’가 나에게도 검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생긴 나의 소극적 태도는 중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를 사귀는데 큰 걸림돌이 됐다. 내가 사귄 아이들 중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들은 없었고 단지 학급친구들 뿐이었다. 다행이 2학년 때 도서실 도우미를 맡게 되면서 아이들과 친해지게 됐다. 친해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중에는 내가 친구들과 닮아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극적이었던 내 성격도 많이 활발해져서 연극반과 중창반에 들어서 지역대회에도 참가했다. 이렇게 친구들과 지내면서 지루했던 내 중학교 생활은 점점 활기를 띠게 됐다. 중학교 입학 당시의 나와 졸업 할 때의 나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각자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던 우리는 수능시험을 마치고 고등학교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동안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했던 연락만으로도 서로의 변함없는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직 청소년이다. 어떤 학자는 청소년을 ‘경계인’이라고 표현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경계인. 이 불안정함 사이에서 청소년들이 의지하는 것은 가족보다는 친구들인 경우가 많다. 좋은 친구는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한 산소와 같다.

친구는 사회 생활을 위한 대인 관계를 구성하는 최초의 관계이자 남과의 관계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주위를 둘러보자. 나에게 내 인생을 함께 할 친구가 있는가?

양 송 이  진천고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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