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자산(子産)은 정(鄭)나라 사람이다. 성은 국(國)이고 이름은 교(僑)이다. 자산은 그의 자이다. 기원전 547년부터 기원전 522년까지 25년 동안 재상을 지냈다. 그의 큰 치적은 국내 정치를 개혁하고 대외적으로 실용적인 외교활동을 펴서 전쟁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는 점이다.

그의 개혁정치가 1년이 되었을 때 동네마다 도적과 깡패가 사라졌고, 노인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없었고, 어린아이들이 중노동에 동원되는 일이 사라졌다. 2년이 되었을 때 시장에서 가격을 속이는 일이 사라졌다. 3년이 되었을 때 대문을 잠그는 집이 없었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었다. 4년이 되었을 때 농기구를 그대로 놓아둔 채 집에 돌아와도 아무 일이 없었다. 5년이 되었을 때 군대를 동원할 일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백성들은 나라의 명령이 없어도 모두가 알아서 예를 갖추어 살았다.

어느 날 자산이 임종을 앞두고 유길이라는 신하를 불러 유언을 하였다.

“내가 죽으면 그대가 재상에 오를 것이다. 부디 나라를 엄하게 다스리기 바란다. 불이란 격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기 두려워한다. 그래서 오히려 불에 타거나 상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그러나 물은 부드럽고 온화하기에 사람들이 겁 없이 접근한다. 그래서 빠져 죽거나 해를 입는 자가 많은 것이다. 바라건대 그대는 반드시 백성을 엄하게 다스리라.”

얼마 후 과연 유길이 재상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자산의 유언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폈다. 백성들을 가엾게 여겨 벌을 피하고 온정으로 다스렸다. 그러자 정나라의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도적질을 시작했다. 심지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들도 나타났다. 나중에는 나라의 곡물 창고를 공격하는 반역도들이 생겨났다. 갈수록 못된 세력이 커져가자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유길은 하는 수 없이 몸소 군대를 이끌고 나라 안의 못된 무리들을 공격하였다. 여러 날 혈투를 벌인 끝에 겨우 도적들을 평정하였다. 하지만 이 싸움으로 많은 백성과 군사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하여 큰 피해를 보았다. 그때서야 유길은 크게 뉘우치고 자산을 떠올렸다.

“내가 처음부터 자산의 유언을 실행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웃 노나라에 사는 공자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로 그런 것이다. 정치가 지나치게 관대하면 백성들이 게을러져 통치에 복종하지 않는다. 또한 정치가 지나치게 맹렬하면 백성이 잔혹해진다. 그렇게 되면 법이 가혹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는 항상 조화가 중요하다. 강경과 온건을 적절히 구사해야 정책이 통하고 인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산이야말로 정치를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서정쇄신(庶政刷新)이란 정치의 여러 폐단을 말끔히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올해 황금돼지띠에는 부디 낡은 정치의 폐단이 확실히 청산되기를 기원한다. 특히 권위주의와 기밀주의와 국회의원들의 특권이 모조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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