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청풍도가 앞에서 이러는 속셈이 무어냐?”

“청풍도가에 진 빚을 갚으러왔다고 하지 않느냐?”

“빚을 갚으러왔으면 빚이나 갚고 가면 될 일을 왜 사람들을 모아놓고 작당을 하는 것이냐?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냐?”

청풍도가 무뢰배들이 아무래도 의심스럽다는 듯 도식이에게 정체를 물었다.

“나는 장구경을 왔다가 동네 아제를 만나 여기 도가에 빚을 갚고 억울한 심정을 성토한다기에 따라왔다. 뭐가 잘못 됐느냐?”

“어느 마을에서 왔느냐?”

“북진에서 왔다!”

조금의 막힘도 없이 일사천리로 대답하는 도식이를 보며 청풍도가 무뢰배들이 말문이 막히며 한풀 꺾였다.

“어서 물러나거라!”

“저기 성난 사람들에게 밟혀죽기 싫으면 썩 꺼지거라!”

동몽회원들이 도식이를 거들며 운집해있는 사람들을 부추겼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을 듯 함성을 지르며 위협했다.

“저누무 새끼가 청풍도가 불한당이오! 그누무 새끼부터 잡아 족칩시다!”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웬 사내가 앞으로 나서더니 도식이와 맞서 따지고 있는 무뢰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제, 이 놈 말이유?”

도식이가 사내의 말을 받아 맞장구를 쳤다.

“그누무 새끼는 청풍도가에서도 상악질이오. 그놈 무서워 청풍장에 못 오겠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오!”

“맞소! 그 놈부터 꿇어앉혀놓고 경을 칩시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들고 일어났다. 청풍도가 무뢰배들이 사람들의 성난 소리에 멈칫거리며 물러났다.

“여러분들 중 누구라도 좋으니 청풍도가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서주시오!”

무뢰배들이 물러나자 김상만이 다시 발언할 사람들을 찾아 부추겼다. “나는 강아동에서 온 궁달이우다. 난, 지금도 이렇게 얘기했다가 혹여 후일에라도 청풍도가에서 보복을 당하면 어쩔까 해서 두려운 게 사실이우다.”

궁달이가 청풍도가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무뢰배들의 눈치를 살폈다.

“궁달이, 여기 우리 마을 사람들이 전수 모여 있는데 뭔 걱정인가? 그러니 서슴없이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자네 얘기를 해보게!”

김길성 임방주가 주눅 들어있는 궁달이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사람이 살다보면 무슨 일이 생겨 도가에 손을 벌릴 일이 생길지 누가 아우까? 우리 같이 가진 것 없고, 힘없는 것들은 억울해도 암맛두 말구 그저 국으로 쥐죽은 듯 표 나지 않고 사는 게 상책인데…….”

궁달이는 무뢰배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 후일에라도 급한 일이 생겨 청풍도가를 찾게 되었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었다. 그런 심경은 지금 청풍도가 앞에 운집해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같은 생각일 터였다.

“오늘 청풍도가에 진 자네 빚은 몽땅 갚아줄 걸세! 그러니 궁달이 자네가 어떻게 빚을 지게 되었는지 그 얘기를 해보게!”

“그 얘기는 내가 형님한테 전수 얘기 했잖우?”

“그 얘기를 오늘 이 자리에서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해보라는 얘기여!”

김길성이가 궁달이를 재촉했다. 궁달이가 떠밀리듯 마지못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도가에 진 빚은 쌀 두 섬 반이우다. 본래는 지난 봄 반 섬을 빌려다 먹은 것이 한 해 만에 두 섬으로 불어난 것이오. 지난 봄 늙으신 부모님 환갑을 해주려고 쌀 반섬을 꿔왔지유. 두 해 전 어머니 회갑도 사는 게 그래 못해 드려 마음에 걸렸는데, 지난 해 아부지 환갑이 또 됐지 뭐유. 우리 아부지는 자식 사는 형편보다도 남 체면치레가 더 중한 사람이라 눈만 뜨면 ‘이젠 남사스러워 대문 밖 출입도 못한다’며 나만 보면 갈궈대는 것이였소. 그기 뭔 소리냐 하면 아부지는 남의 집 잔치를 다니며 얻어먹는데, 우리 집에서는 잔치할 생각도 없으니 동네사람들 볼 면목이 없다는 거였우다. 여기 모인 사람들도 다 한가지겠지만 빌려 쓰기는 쉬워도 그걸 갚으려면 얼마나 뼛골이 빠져야 하우? 남에 빚지는 것이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가는 것보다 무서워 염치는 없지만 그냥 넘어가려고 했우다. 그런데 눈만 마주치면 환갑 타령을 하니 견딜 수가 없더이다. 냉중에는 이런 생각이 들더이다. 사람 사는 게 뭔데, 자식 된 도리가 뭔데 형편이 어렵다고 평생 한 번인 아부지 환갑상 한 번 차려주지 못하는가 하는 그런 생각이우. 그래서 두 양반 환갑상을 함께 차려드릴 요량을 하고 청풍도가를 찾아갔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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