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1985년에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우연히 선택한 과가 국어교육과였습니다. 향가를 배우던 중 양주동의 ‘고가연구’를 읽으며 우리말의 뿌리가 환히 보이는 착각을 하였습니다. 곧이어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 어원사전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부터 어원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이남덕(이화여대)을 비롯해 강길운(충남대), 서정범(경희대) 같은 분들이 어원 연구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안도의 한숨도 나왔지만, 학계 전체의 분위기로 볼 때 여전히 어원 연구는 제자리걸음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원사전을 만들기에 도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것을 모조리 모아서 사전을 만들면 부족하더라도 첫 삽은 뜰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어원 연구에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컴퓨터가 286을 넘어서 386이 나오고 각 분야로 보급이 시작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저도 386 최신 컴퓨터를 사서 거기에 모든 어원을 쓸어넣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작업 끝에 1997년에 한국어 어원사전을 탈고하였습니다. 저의 책 ‘우리 활 이야기’를 내준 학민사에 원고를 보냈더니, 좀 더 보완작업을 한 뒤에 내자는 신중한 의견을 비치더군요. 그래서 그러마 하고 일단 보류를 했습니다.

아직 미진한 언어에 대한 보완을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 미진한 언어라는 것이 신체어를 비롯해 우리 일상의 가장 중요한 말들이어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저의 관심은 활쏘기로 돌아섰습니다. 이 분야 역시 황무지와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활쏘기로 관심이 돌아선 채 10년이 훌쩍 흘러갔습니다. 제가 보류한 원인이 되는 중요 일상 언어들이 어원의 베일을 벗은 것은 강길운의 업적이었습니다. 비교언어학을 전공한 분이 그런 시각으로 방대한 규모의 어원사전을 낸 것입니다. 이 시리즈 ‘시인의 책꽂이’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비교언어학적 어원사전’입니다.

이 책은 우리 겨레와 많이 겹치는 여러 겨레의 언어와 우리말을 비교한 것입니다. 분석이나 해설보다는 말과 말을 비교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어학에서는 중요한 관심이과 의미이겠으나, 일반인으로서는 조금 아쉬운 방법입니다. 일반인들은 우리말의 뿌리가 어떻고 그에 따라 일상에서 쓰이는 언어가 어떤 뜻으로 변화되었느냐 하는 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준 책이 바로 백문식의 이 책입니다.

백문식의 책은 2014년에 처음 나왔고, 강길운의 책은 2010년에 나왔습니다. 강길운의 책을 읽으며 이제 제가 어원에 손을 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끊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어원사전의 필요에 대한 아쉬움은 늘 남았습니다. 백문식의 책을 구해보니, 제가 쓰고자 한 방향과 가장 많이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는 어원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어의 어원에 대한 탐구는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앞서 발표한 글들을 보면 아직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 말들이 있고, 학자들의 연구에서 허점이 많아서 제가 보는 수준에서도 못마땅한 연구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앞의 단점을 보완한 더 좋은 사전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완벽한 어원사전을 얻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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