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2019년을 시작하는 배가 항구를 떠나 망망대해로 출항했다. 다림질해 놓은 듯 잔잔한 바다로 새해 꿈과 희망을 싣고 미끄러져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잔잔하던 바다에 물결이 일고 서서히 깊은 주름이 생긴다. 배가 출렁인다. 바다 위엔 많은 배들이 오간다. 서로 새해 인사를 나누며 지나친다.

한해의 시작이 겨울이다. 농한기를 맞아 한가롭다. 시무식을 하고 설날과 정월 대보름을 맞아 떡과 오곡밥, 쥐불놀이, 농악놀이로 흥을 돋운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화롯불에 밤과 고구마를 구워 김치와 함께 먹으며 겨울밤을 즐긴다. 날이 조금만 풀리면 과수의 전지를 하고 거름을 주며 기지개를 켠다.

수온이 높아지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논과 밭을 갈아엎고 로터리를 치고 씨앗을 뿌린다. 어망을 손질하듯 밭에 비닐을 덥고 모종을 한다. 밭이 푸른 바다처럼 파도치는 고랑이 만들어지고 부서지는 물방울처럼 푸릇푸릇 새싹들로 들어찬다. 새벽이슬과 봄비로 몸을 불리고 살 통통 오른 우럭처럼 튼튼하게 자란다. 풀을 뽑아주고 덧거름을 주고나면 갈치처럼 기다랗게 자라 오른다.

햇살이 따뜻함을 지나 뜨거워졌다. 표류하는 배에서 갈증을 호소하는 사람처럼 곡식들이 목말라 한다. 기후변화 탓인지 장마도 없이 가뭄만 지속된다. 무지막지한 태풍이라도 오라고 손짓 해본다. 그런 중에도 꽃은 피고 열매는 맺는다. 감질나게 뿌려주는 물에 의존하여 곡식들이 익어간다. 여름에 수확하는 감자, 옥수수가 탐스럽게 영글었다. 살구, 자두, 복숭아도 잘 익어 더위를 잊게 한다.

고비를 넘기고 가을을 맞이한다. 들판이 노랗게 변해가고 참깨, 들깨가 영글어 간다. 땅속에서 숨죽이며 여름을 보낸 땅콩과 고구마가 풍선 부풀리듯 살찌운다. 바람은 선들선들 불어오고 감과 사과가 빨갛게 홍조를 띄운다. 여름내 조용했던 들판이 기계들의 노랫소리로 가득하다.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밤새 누가 물감을 뿌렸는지 산과 들이 온통 형형색색으로 물들어있다. 여행객들과 어울려 더욱 화사한 빛깔로 물든다. 속이 노란 배추도 빨갛게 화장하고 단지 속으로 숨는다.

마늘 심고 지붕 이엉 얹고 낙엽 밟는 겨울이다.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쑤고 장을 담근다. 동치미 국물과  팥죽을 먹다보면 한해가 기운다. 몸이 불편할 땐 병원도 다녀와야 하고 애경사에도 참석해야 한다. 몸이 힘들고 지칠 때 여행도 즐기고 각종 회의와 행사에 참석하다보면 번개가 스쳐지나가듯 떠밀려 간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시작과 끝의 반복이다. 심고 가꾸고 잡고 거두어들인다. 쉬다가 때로 병원에 들러 몸을 다독이고 행사에 참석하고 여행도 다니며 견문을 넓힌다. 그러면서 마음은 커진다. 이런 과정을 거처 한해의 조업을 마친다. 시작이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더욱 중요하다. 과정 속에서 그만큼 영글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시작은 과정 속에서 변화하고 변화 속에서 발전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 작년보다 나은 금년, 금년보다 희망으로 다가서는 내년이 있다.

연말이 되면 서산으로 기우는 해를 등대삼아 긴 여정을 마치고 한해를 마감하기위해 항구로 돌아온다. 신년 함께 출항했던 모든 배들이 다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항구로 돌아온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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