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청양의 두릉윤성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종시에서 차를 돌려 신탄진을 거쳐 대전시 동구 마산동으로 향했다. 대청호 주변의 큰 음식점인 ‘더리스’에는 가족 단위로 외식하러 온 사람들의 차량이 가득하다. 행려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는 회덕 황씨 재실인 미륵원 쪽을 버리고 찬샘마을 쪽으로 좌회전해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마산동 산성 표지판이 나온다. 좁은 길가에 주차를 하면 다른 차들의 통행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산불 감시원이 산성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공터가 있다고 일러주었다. 공터에 차를 세우고 이정표를 따라 산성으로 향하는데 산불 감시원이 다 망가진 산성을 뭐하려고 보러 가느냐고 묻는다. 생각해 보니 참말로 쓸데없는 짓이다. 잘못하면 산불이나 낼 일이니 말이다.

산성까지는 2km이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테메식 산성을 만난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 길은 잘 나 있었다. 이곳이 대청호 500리길의 한 코스이기 때문에 답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길은 제법 가파른데다가 잔돌과 마른 나뭇잎 때문에 밟을 때마다 미끄러진다. 봉우리가 가까워지자 산불이 났었는지 산비탈에 서있는 나무들이 불에 그슬렸다.

스산한 마음으로 올라가는데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봉우리가 보였다. 봉우리에 오르니 한 70m 정도 거리를 두고 동쪽과 서쪽 두 봉우리에 돌무더기 쌓인 곳이 먼저 보인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돌무더기를 감싸 안으며 성벽이 있다. 작은 두개의 봉우리를 둘러싼 테메식 석축산성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돌무더기는 무너진 장대라고 할 수 있고 장대를 둘러싸고 있는 길쭉한 성벽을 추정할 수 있다. 성벽은 남벽의 길이가 약 7,80m, 북벽의 길이도 역시 그 정도 돼 보인다. 남벽은 성의 흔적이 분명하나 북벽은 잡목 속에 묻혀 있다. 전체가 마치 누에고치 모양으로 가운데가 잘록한 타원형이었다.

돌무더기를 헤치며 남벽을 돌아보았다. 무너진 돌이 성의 규모에 비해 많은 것으로 보아 작지만 상당히 높고 견고한 성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마침 성벽의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을 발견했다. 성벽 5단 정도가 한 2m정도 고스란히 남았다. 아마도 밑 부분을 파내려 가면 땅 속에 묻힌 부분에서 축성 당시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돌은 가로 40~50cm 정도, 세로 20~30cm 정도로 길쭉하다. 돌은 화강암으로 상당히 견고한 돌이다. 성돌을 다듬어 바른 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남아 있는 약 9단 정도의 성벽에서도 맨 아래에 쌓은 돌보다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들여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중간에 넣는 쐐기돌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돌과 돌 사이의 틈이 넓게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상당한 기술을 가진 석공들이 축성에 동원되었을 것이다.

마산동산성은 사비나 웅진에서 동쪽으로 신라와 경계를 이루는 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계족산성이 사령부라면 자성(子城)들이 띠를 이루고 있는 한 부분이다. 개머리산성이 동진 북진 남진의 사거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동진의 끝에 있는 마산동산성은 규모는 작지만 백골산성과 마주보는 연결고리라는 점이 의미 있을 것이다. 남쪽에서 옥천을 거쳐 회인과 보은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거나 신라의 서쪽 전선을 이루는 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보은의 삼년산성에서 회인을 거쳐 사비로 가고자 하는 적을 막는 최전방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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