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출라 판타카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와 형인 마하 판타카는 천민의 자식으로 부모에게서 떨어져서 외할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그의 형인 마하 판타카가 먼저 출가하여 도를 깨우치자 동생인 출라 판타카를 출가시켰다. 그러나 머리가 우둔한 출라 판타카는 하나의 게송을 4개월이 되어도 외우지 못하였다.

형은 아우인 출라 판타카를 열을 다하여 가르치고자 하였으나 전혀 진척이 없고, 주변 사람들이 동생을 경멸하고 조롱하자, 형은 어쩔 수 없이 동생에게 “너는 집에 가서 세속 일이나 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승원 밖으로 내보냈다.

형만 의지하고 생활하던 출라 판타카가 승원을 나와서 길가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울고 있자, 이를 본 부처님이 다시 승원으로 데리고 돌아와서 그에게 빗자루를 주면서 “먼지를 쓸고, 때를 닦아라”라고 하셨다.

출라 판타카는 성의를 다하여 “쓸고 닦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속하여 외우면서 승원을 깨끗하게 하고 닦는 일에 전념하였다.

출라 판타카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청소에 전념하는 과정에서 자신 속에 있는 집착과 번뇌를 쓸어버리고 스스로 해탈을 하게 되었다. 이를 출라 판타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이를 깊이 마음속에 간직한 채, 최상의 도리를 깨닫기 위해, 마음을 한곳에 모았다. 나는 마침내 전생의 일을 깨달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실현되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핵심은 깊이 파고 들어가 빠지는 몰입에 있다. 종종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지식을 쌓는 것이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깨달음은 경전을 많이 외우는 것이 아니다. 교육도 이처럼 되어야 한다.

20대 80 법칙이라는 경제학적 논리와 도구적 논리에 의하여 강의는 똑똑한 20%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 대로라면 상위 20%가 아닌 하위 20%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교과서를 외우지 못하고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하위 20% 학생을 교실 밖에 있는 학생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부처님의 나라와는 달리 우리의 교육제도와 교실은 학생들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지식과 영리한 학생을 가리는 수학능력과 내신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의 결과를 서열화하고, 학생 성적으로 전공의 서열화를 만들고 있다. 부처님은 우둔한 자를 선택하여 교육하고 있지만, 사회는 경전을 잘 외우고 영리한 사람만을 선발하여 교육하고자 한다. 학생들이 무엇인가에 몰입하게 하기보다는 슈퍼우먼과 슈퍼맨을 만들어서 깨달음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이 경전을 외우는 교육이 아닌 부처님이 빗자루를 쥐여 주고, 무엇엔가 몰입할 수 있게 하려면 지금보다는 더 출라 판타카에 관심을 가지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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