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참에 우리도 청풍도가 놈들에게 본때를 한번 보여줍시다!”

마덕필이 떠나자 최풍원이 본방에 모여 있던 임방주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대주, 뭘 어떻게 할 작정인가?”

김상만 양평 임방주가 물었다.

“이포에서 쌀이 올라오면 청풍도가 앞에 모두 모여 성토대회를 합시다!”

“무슨 성토대회를 한다는 말인가?”

“마 선주가 갖다 주겠다고 한 날보다 하루를 더 늦춘 것은 그날이 청풍읍장 장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장꾼들이 많이 모이면 청풍도가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성토를 하게 할 생각입니다.”

“후안이 두려워 사람들이 모일까?”

김길성 광의리 임방주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임방주님, 이번에 가져오는 쌀로 사람들이 진 빚을 갚아줄 생각입니다. 빚을 갚아줄 테니 모두 모이라고 할 생각입니다.”

“그 빚을 본방에서 거저 갚아준다는 말인가?”

배창령 학현 임방주가 눈이 휘둥그레해져 물었다.

“각자 지들이 먹느라 빌린 쌀을 본방에서 왜 갚아준단 말인가?”

박한달 연론 임방주가 순진한 배창령을 비난했다.

“임방주님들, 사람들이 진 빚을 대신 갚아주고 청풍도가 빚 장부를 우리가 돌려받는 것이지요. 그리고 빚은 각 마을의 임방주들께서 갚아주는 것으로 하고 사람들이 생산하는 물산으로 빚을 갚도록 할까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청풍도가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나 북진본방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나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마을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라도 있어야 그리 할 것이 아닌가?”

“일단 우리가 떠안은 빚에 대해서는 청풍도가처럼 이자에 이자를 쳐서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 년 간은 원금만 갚으면 모든 이자는 탕감해줄 작정입니다.”

“그럼 본방은 뭘 먹고 산다는 말인가? 흙 파서 먹는가?”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은 청풍도가와 사람들의 고리를 끊는 것이 일차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사람들과 거래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이자를 챙겨 당장 눈앞의 이득을 챙기는 것보다 후일 훨씬 더 큰 이득이 우리 북진본방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최풍원은 자신의 복안을 각 임방주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청풍 장날 사람들을 모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소상히 밝혔다.

“성토할 사람들은 어떻게 할 텐가? 마을마다 할당을 할 텐가, 아니면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토설하게 할 텐가?”

“청풍도가에 원한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도 성토가 시작되면 너도나도 벌집을 수신 것처럼 들고 일어설 걸세!”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네. 아무리 원한이 있어도 북진본방보다 청풍도가에 더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몸을 사릴 것이네!”

“연론 임방주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세상인심이 그런 법이여!”

“임방주님들, 일단 성토할 사람을 물색은 해놓고 그날 사정을 봐가며 형편에 맞추면 좋겠습니다.”

최풍원이 정리를 했다.

“이 일은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하자구. 떠들썩하게 일을 만들다 청풍도가에서 눈치 채면 그르칠 수도 있으니 귀신도 모르게 계획을 세웠다가 단번에 터뜨려야 하네!”

김상만 양평 임방주가 최풍원과 임방주들에게 입조심을 당부했다.

그것은 김상만의 판단이 옳았다.

청풍도가의 중심을 이루는 장사꾼들은 대대로 읍내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온 토호들로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토착세력이었다. 이들은 고을 원님도 함부러 하지 못할 정도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이니 인물이 김주태였다. 김주태는 아버지 김 참봉으로부터 땅과 권력을 세습 받아 힘들이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았다. 김주태 같은 토호들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를 만든 것이 청풍도가였다. 청풍도가는 청풍관아의 원님과 결탁하여 청풍관내의 모든 이권을 주무르며 탄탄대로를 걸어온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장사꾼들이었다. 그들은 관아의 비호를 받으며 장세를 걷고 청풍나루를 오가는 뱃꾼들에게 선세를 부과해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입의 상당 부분은 뒤를 봐주는 벼슬아치들의 수중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런 뒷배를 가지고 있는 청도가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최풍원 같은 변두리 장사치 하나쯤 죽이는 것은 닭 모가지 비틀기 보다 수월한 일이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살얼음판 걷듯 조심조심해야하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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