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제6부 도거리로 북진본방 상권을 넓히다(479)
[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제6부 도거리로 북진본방 상권을 넓히다(479)
  • 충청매일
  • 승인 2019.01.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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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풍원은 지난 번 한양을 다녀오는 길에 여주 이포나루에서 선적했던 쌀이 떠올라 하는 말이었다. 대궐에 공납하고 함길중 대고로부터 받은 쌀은 하미였지만 웬만한 중질 이상의 품질이었다. 그 정도라면 하미라도 상미로 둔갑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거지를 쓰며 폭리를 취하는 청풍도가 놈들을 뒤통수를 치고 고랑탱이를 먹이려는 속셈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선 당장 급한 것은 쌀을 어떻게 구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하미도 여러 질인데, 어떤 하미를 말하는가?”

“지난번 하미보다 더 값싼 것이 있을까요?”

“값싼 것이야 많지만 청풍도가에 갚을 쌀이라면 어중간해야할 것 아닌가?”

“될 수 있으면 돈도 줄이고 이놈들 골탕 먹이고 싶은데…….”

“그렇다면 좋은 수가 있지!”

“있습니까?”

“암, 여주는 예전부터 쌀 산지 아닌가. 그러니 별별 싸장수가 다 있지. 그런 쌀만 만들어 파는 미곡상도 거기에 가면 있지.”

“그런 쌀을 만들다니요?”

“쌀을 둔갑시키는 것이지.”

마덕필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관아에서 농민들에게 세곡을 거둬들일 때는 농사가 잘 된 쌀을 받았다. 지주나 부자들은 더했다. 싸래기 한 톨 섞이지 않은 상미로만 도지를 받았다. 관아에서는 세곡으로 받은 쌀을 도성 곡물창고로 입고시킬 때는 개수만 맞추면 끝이었다. 이것을 이용해 좋은 쌀과 나쁜 쌀을 바꿔치기하여 남는 쌀을 착복하는 것이었다. 지주나 부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둬들인 상미로 청치나 싸래기가 섞인 하미로 바꾸면 서너 배로 불릴 수 있었다. 이런 질 나쁜 쌀을 다시 곤궁한 농민들에게 고리의 장리쌀로 꿔주고는 가을 추수 때 최상의 질 좋은 쌀로 요구해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쌀 한 섬이 곧바로 서너 섬으로 불어나고,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면 한 섬의 쌀이 새끼에 새끼를 쳐 수십 가마로 불어났다. 농사를 지어 받는 도지는 비슴에 불과했다. 관아의 관원이나 지주나 부자들 뱃속을 채워주는 그런 쌀은 모두 농민들 부담이었다. 당장 땟거리가 급급한 농민들로서는 황당하고 억울해도 그저 수그리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쌀을 만들어주는 미곡상이 여주에는 많다는 이야기였다. 되를 속여 파는 말감고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였다. 그래도 말감고는 자신이 하는 짓이 부끄러워 남의 눈을 속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관리들이나 지주나 부자나 상인들은 자신들이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외려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당당하게 도둑질을 하는 게 요즘 세상이었다. 번연히 눈앞에서 도둑질을 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지를 못하는 것이 요즘 세태였다.

“선주님, 그런 하미 육백 섬을 사주세요!”

“육백 섬이나? 청치나 싸래기가 섞인 그런 쌀을 육백 섬이나 산다면 석 당 두 냥 밑으로도 살 수 있을 걸세!”

“그렇게 싸면 표가 나지 않을까요?”

“그러면 장사를 해먹겠는가. 워낙에 솜씨가 좋은 기술자들이라 농사꾼이 봐도 모를 정도로 깜쪽같다네!

마덕필이 최풍원이 하는 걱정을 기우로 날려버렸다.

“그럼 언제까지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오고가고 싣고 하려면 닷 세는 소요되겠지.”

“그럼 선주님, 엿새까지 청풍 읍성나루로 쌀을 실어다 주세요.”

“여기 북진나루가 아니고, 읍성나루 말인가?”

“예. 청풍관아 아래 읍성나루로 실어다 주세요!”

최풍원이 쌀을 북진나루가 아닌 청풍관아 아래 읍성나루로 실어다 달라고 마덕필 선주에게 주문한 것은 그 쌀이 청풍도가에 갚을 쌀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풍원은 나름대로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을 벌일 작정이었다.

“최 대주, 부탁한 쌀은 그날까지 읍성나루에 대주겠네!”

마덕필이 최풍원과 약조를 하고 여주 이포나루로 떠났다. 마덕필로서도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었다. 손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자다가 떡이 생긴 격이었다. 짐배들을 부리고 나면 경상들은 할 일이 없었다. 물건이 팔릴 때까지 나루터 언저리 주막을 전전하며 술이나 푸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하루 일과인데 여주까지 가서 쌀을 실어올 일이 생겼으니 간만에 몸을 풀게 되었다. 더구나 여주 이포나루에 가서 쌀을 실어오면 그 댓가로 돈까지 벌게 되었으니 마덕필로서는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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