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가끔 부의 비법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때마다 난처하지만 어정쩡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엊그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큰 녀석이 소파에 걸터앉아 난데없이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느냐고 묻기에 돈 모으기와 돈 벌기부터 구별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돈을 모으지 않고서 돈을 벌 수 없는 일이고, 번 돈을 지키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훈시 했다.

중요한 사실은 소득이 높다고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아무리 쪼들려도 먼저 저축을 한 후 나머지 돈을 아끼면서 사는 것이 돈을 모으는 첩경임을 주지시키고 다음과 같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월 소득이 각각 100만원과 300만원의 가정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집에서는 미래를 위해 월 30만원씩 저축을 하고 있고, 소득이 많은 집은 씀씀이가 커서 월 30만원씩 초과지출을 하고 산다면 일년 후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저소득의 집은 최소한 360만원 이상을 저축했고, 고소득의 집은 동일한 액수를 어디선가 빌려야만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부자 되기의 첫걸음은 돈 모으기부터 시작해 모으고 나면 이것이 종잣돈이 된다. 종잣돈이 갈 수 있는 길을 크게 네 가지이다. 이 사거리에는 이자율이라는 신호등이 있다. 이자율이 높다면 돈은 은행으로 간다. 이 곳은 위험이 없고 확실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해진 이자를 꼬박꼬박 받을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이자율이 낮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옆 동네인 증권시장으로 가게 된다. 이 곳은 위험이 높고 불확실하다. 종잣돈이 다 날라 갈 수도 있고, 투자 금액보다 몇 배 이상으로 커질 수도 있다. 이 길에서는 입술이 마르고 속이 새까맣게 타는 고난을 겪어야 한다. 한편 이자율이 낮아도 증권시장이 썰렁하면 부동산시장이 북적거린다. 이 곳은 요술방망이가 난무하는 시장이다.

은행에 있자니 대우가 마땅치 않고, 증권이나 부동산도 너무 오리무중이어서 방황할 때는 어디서 알았는지 짙은 화장으로 유혹하는 곳이 있다. 바로 지하경제다. 이 곳은 세금이 없어 천국처럼 보이지만 법망에 걸려들면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결국 돈을 모으는 것은 근면만으로도 가능하지만 돈을 벌 가능성은 모은 돈을 투자방법에 있다. 위험이 클수록 수익도 큰 것이 보편적이다. 고위험과 고수익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떻게 돈을 벌겠느냐는 돈의 주인이 결정할 일이다. 보수적이고 소심한 사람은 위험을 회피하지만, 공격적이고 뱃심좋은 사람은 위험을 선호하면서 모험을 강행한다. 따라서 부자들은 무모한 투자가에 가깝다. 케인즈가 말하는 동물적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대개 부동산 임대를 하는 데 작은 부자는 가게 주인이고. 큰 부자는 빌딩 주인인 차이를 갖는다.

우리나라 부자는 부동산과 관련을 갖고, 무리해서 부동산을 산 사람들이다. 돈이 된다싶으면 먼저 산 후 돈 모으기 목표를 상향조정한다. 그래서 부자들은 늘 돈이 부족하다. 위험과 불확실성이라는 스트레스를 끌어안고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강 이런 이야기를 마친 후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녀석은 아주 쉽게 ‘재벌 2세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제 방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나도 내 방에 들어 와 아이의 대답을 곱씹으며 이 놈의 재테크가 한 수 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 광 식 < 충청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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